[월요인터뷰] 고홍주 미국 예일대 법과대학원
학장
[중앙일보 2006-07-30
20: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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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현영.김태성] 미국 예일대 법과대학원
고홍주(52.미국명 해럴드 고) 학장의 25일 유민(維民)기념 강연회에는 1000명이 넘는 청중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고 학장 개인에 대한 관심과 '국제화와 인권'이라는 강연 주제에 대한 호응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한된 강연 시간에 그의 얘기를 다
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따로 만나 성공담과 북한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한 의견을 다시
들었다.
김영희=가장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의 한 사람인데,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만 혹시 똑똑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 아닙니까.
고홍주=제 부모님은 능력도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분들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을 무조건 자녀의 역할모델(role model)로 삼기보다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무엇이 가치(value) 있는 일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역할모델도 각자에 맞는 걸 찾아야 하고요.
김=어머니 전혜성 박사가
자녀교육에 관해 쓴 책을 보면 재주가 덕을 앞지르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뜻입니까.
고=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나 인성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착안한 것이죠. 재주만큼이나 가치도 중요합니다. 청부 살인업자는 일은 완벽하게 해도 가슴과 영혼이 없잖아요. 탁월함은
인간성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김=학생 시절 공부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어떻게 나눠
썼습니까.
고=공부만 한 건 아니고 야구와 록음악, 그리고 영화를 좋아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아침에 공부하고 저녁에는 일찍 자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즐겼습니다.
김=한국계 미국인으로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를 느낀 적은
없습니까.
고=성인이 된다는 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시점에 나는 100%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몇 % 한국인이고 몇 % 미국인인가 고민하다가 '100%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더니 쉬워지더군요. 처음엔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문화를 잘 아는 배경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국제적인 일을 찾게 됐고 결국 법과 외교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김=역시 다문화란 배경은 큰 자산이겠죠.
고=두 문화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렇게
태어났다면 그 특성을 이점으로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김=공부 잘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고=아버지는 낮 12시 이전에 한 시간
공부하면 오후에 두 시간 하는 것과 같고, 밤 12시 이전에 한 시간 자는 것은 자정 이후 두 시간 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저녁 일찍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장시간 일을 하곤 하지요. 그게 능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 잔 뒤 새벽에 일어나 12시간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는데 더 높은
공직으로 진출할 생각이 있습니까. 상원의원이나 주지사 같은 선출직에도 관심 있나요.
고=선출직은 관심 없습니다. 마지막 선출직은
11세 때 했습니다. (웃음) 공직은 한 번 정도 더 맡고 싶어요. 차관보 때는 어느 정도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으나 최고결정권자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다른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겠습니다.
김=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의 나이가
20~30대에서 10대로 내려갔습니다. 조기 유학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일찍 가면 현지 문화에 적응하기는 쉬울 겁니다. 반면
부모와의 유대는 잃게 되지요. 저는 아이들이 대학 갈 때까지 함께 살려고 해요. 큰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날 땐 섭섭하기도 했지만
가족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돼 마음이 놓였어요. 그보다 5년 일찍 떨어져 살았더라면 큰아이의 가족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을 겁니다. 한국
부모들은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김=강연에서도 가족의 가치를
여러 번 강조했는데요.
고=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도 가족이 해체된 사람들을 보면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하는 생각이 들지요. 죽을 때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걸'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잖아요.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을 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미국은 극심한 경쟁사회로 통합니다. 경쟁은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낙오자를 돌보는 시스템이
없는 한 승자에게도 부담이 됩니다. 이 딜레마의 해법은 무엇입니까.
고=어려서 운동 경기를 볼 때 아버지는 항상 지는 팀을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 사회는 경쟁적이지만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성향도 강합니다.
김=9.11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시민적 자유를 많이 포기하고 있다고 봅니까.
고=그런 요구는 많지만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저항하기 어려운 법이죠. 특히 무슬림 이민자들이 힘듭니다. 9.11테러와 관련해 네 개의 사건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세 건에서
미국 정부가 패배했습니다. 그것도 보수적인 판사들이 포진한 대법원에서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시민들의 자유를 다루는 데 실패했다는
방증이죠.
김=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내린 땅에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이 보호해야 한다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부시의 중동정책에 얼마나 반영됩니까.
고=미국 헌법은 정교분리를 규정하고 있어요. 정책이 종교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지원 법안 거부 등은 헌법의 정신을 침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김=국무부
차관보이던 2000년 가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압박으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려는 부시 정부의
정책은 정당합니까.
고=저는 방북한 최고위직 한국계 미국인인데, 당시 평양은 황량하고 생명력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북한 인권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참혹합니다. 북한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압력은 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효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독재자이기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요. 지금은 지속적인 포용정책을 펼 때입니다.
김='헬싱키 프로세스'가 북한 인권개선에 도움이
될까요.
고=1976년 소련에 인권문제를 제기한 헬싱키 프로세스는 압박과 대화의 복합체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소련이 충족시켜야 할
조건, 평가 근거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한 겁니다. 북한판 헬싱키 프로세스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유럽에서의 성공에는 소련 체제의 취약성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지금이 북한에 그런 시점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김=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인권 압박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처지죠.
고=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은 입장이 다릅니다. 내부와 외부
채널을 가동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거죠. 한쪽은 나쁜 역할, 다른 쪽은 좋은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중요한 건 양쪽의
노력이 조율되고 투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와 쿠바에 있는 미군의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의 대표적
인권 침해로 거론됩니다.
고=아부 그라이브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고 관타나모도 재앙입니다. 미국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만들어
인권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두 가지 경험에서 미국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식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라크를 포함한 부시 정부의 중동 정책의 대전제가 틀린 것 아닙니까.
고=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은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이 정부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정당을 만들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학과 노조, 언론과 종교 단체를 만드는 데 사회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김=하버드.예일.프린스턴.스탠퍼드 대학들을 염두에 두고 묻습니다. 좋은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배출합니까, 우수한 학생이
좋은 대학을 만듭니까.
고=둘 다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학생의 수준과 교육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령 예일대 법대는 미국
최고이기 때문에 다른 학교와의 경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무엇이 옳은가 정답을 찾는 데 치중하지요.
김=지금 한국의 대학들이
로스쿨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조언을 한다면.
고=법관과 변호사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당사자들의 문제를 이해할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법학 교육의 국제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한국의 시도도 이런 추세의 일환으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정리=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고홍주
학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법 학자로 인권법.국가안보법.국제경제법 분야의 권위자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8년 한인으로는
최고위직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로 임명돼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를 거쳐 하버드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법무부 법률자문관을 지낸 뒤 31세에 예일대 법대 교수가 됐다. 3년간 국무부 차관보를 지내고 2001년 강단으로 돌아갔으며 2004년 법대
학장이 됐다. 그의 부친은 장면 정권 때 초대 주미 특명전권공사를 지내다 5.16 군사 쿠데타가 나자 현지에서 망명한 고광림(작고) 박사다.
어머니 전혜성(77) 박사는 4남2녀를 모두 하버드.예일 등 명문대에 보내 전문직업인으로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다 ▶박현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ele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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