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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만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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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만 존재해

[행복한 논어이야기]논어엔 디지털시대의 리더십이 담겨

양병무 한국인간개발원장 | 05/26

 

서울 연신내의 서당을 드나든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 말 속에 한자어가 가끔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서당개 수준은 겨우 넘어선 느낌이다.

나는 한학의 대가인 금곡 하병국 선생님으로부터 대학(大學)과 논어(論語)를 틈틈이 배웠다. 리더십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논어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논어는 연공서열을 강조하는 책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논어를 한장 한장 공부할 때마다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기를 거듭했다.

물론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기에 논어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얘기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우리가 논어를 모르기 때문에 논어가 사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논어의 의미를 경제, 경영학적 안목을 가지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본란을 통해 논어에서 감동 받은 내용들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가끔씩 시도해보고자 한다.

논어의 첫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이다. 배우고 그것을 제 때에 실행하면 진실로 기쁘지 아니한가. 학습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으로부터 기쁨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평생교육과 평생학습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게을리 하면 지식경쟁에서 낙오자가 되고 만다.

이제 리더는 학습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된다. 리더는 학습조직을 만들고 스스로 학습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 학습의 솔선수범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500년 전에 공자가 활동할 당시는 농경사회였다.

학습의 양도 오늘날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적었다. 그럼에도 논어는 그 첫머리에서 학습하는 기쁨을 설파하고 있으니 그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논어에서 강조하는 평생학습은 디지털시대인 오늘에 더욱 피부에 닿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학습하는데서 기쁨을 얻는 것이니 이거야말로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 이제 공부를 게을리 하면 지식사회의 미아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디지털시대를 선도하려면 좋든 싫든 학습하는 자세가 몸에 붙어야 한다. 논어가 왜 학습을 강조하는 지 참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이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구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친구가 좋은 이유는 대화에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다.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른다. 옛날엔 친구는 주로 동문수학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연과 혈연과 지연에 의해 친구관계가 대부분 형성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일차적인 인연으로 맺어진 교우관계는 폐쇄적으로 흐르기 쉽다. 물론 학연 혈연 지연은 중요하다. 하지만 세계화 정보화시대의 친구는 일차적인 관계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제 일을 통한 인연인 事緣(사연)이 강조되어야 한다.

직장과 사회관계가 교제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 관련 분야에서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외국인도 중요한 친구로 간주되어야 한다. 디지털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네트워크지수(NQ)가 높아야 한다. 다양한 각계각층을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도록 친구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구절은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참으로 군자가 아닌가. 군자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주고 있다. 요즈음은 자기 PR시대다. 그래서 이 내용이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냉철히 생각해보면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기에 생기는 일이다.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자신의 진심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니 알아달라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강물에 던지고 마는 것 아닌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자신의 능력과 진심을 몰라주고 부하들이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 또한 제품에 대해 고객이 알아주지 않을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자신을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는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따질 수야 없는 노릇이다. 자기수양을 통해 스스로 강해지면 때가 되면 알아주게 되어 있다. 사실 실력이 비슷하면 눈에 늦게 뜨일 수는 있다.

이 때 남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시비할 게 아니라 더욱 실력을 기르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기 홍보가 중요할수록 비례해서 내공을 다지는 노력이 요구된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 眞光不輝(진광불휘). 참빛은 반짝이지 않는다. 거품은 순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공자는 자신을 진짜 보석으로 만드는 길을 연마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데서 삶의 진수를 느끼라고 주문하고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의 반열에 오른다는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역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논어는 이 세 구절이 핵심을 이루면서 학습과 대인관계와 자기수양에 관한 리더십을 가르쳐 준다. 요즈음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면서 한문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문은 중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과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다.

동양의 고전을 통해 한문도 공부하고 리더십도 공부하면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리더십을 로마인이야기나 폴 마이어, 스티븐 코비, 앤드루 카네기 등 서양에서 뿐만 아니라 동양학의 고전인 논어와 대학에서도 찾아보자. 리더십의 깊이와 맛이 사뭇 달라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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