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재확인한 박근혜 ‘결속’ 이끌어낸 정세균
동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07-23 03:32 최종수정 2009-07-23 09:29
[동아일보]
■ 미디어법 전쟁 주역 손익
그동안 미디어관계법 처리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섰던 여야 주역들은 22일 법안 통과 후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수정안에는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 진출에 따른) 사전규제와 사후규제가 다 있고, 여론 독과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도 도입됐다”며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어 투표는 못했지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TV로 표결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여야의 미디어법 협상 막바지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박 전 대표의 느닷없는 ‘반대표 행사’ 발언으로 야당과의 싸움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던 한나라당은 하루아침에 혼란의 수렁으로 빠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박 전 대표의 ‘합의처리 노력’ 주문은 여야 원내지도부를 협상테이블로 다시 불러내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추가 협상을 통해 한나라당은 ‘야당과의 협상은 더는 어렵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었고 박 전 대표는 막판에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처리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날 통과된 미디어법은 박 전 대표의 제안이 사실상 모두 반영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무시할 수 없는 당내 지분과 ‘박근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박근혜 거부권’을 거듭 확인했다. 당 대표 비서실장인 김효재 의원은 방송법 표결 과정에서 “박 전 대표도 법안에 찬성한다”고 외치며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이(친이명박)계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당내 논의 과정에서 아무런 얘기도 않다가 표결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가서야 돌출 발언으로 당 지도부를 무력하게 만들고 당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 박 전 대표의 ‘나 홀로’ 의사결정 방식에 불만이 나온 부분도 그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미디어법 결사 저지를 외쳤지만 결국 이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제1야당 대표의 단식농성이라는 극한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법안 처리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내 반향은 달랐다. 19일 그가 단식농성에 돌입하자 20일부터 당의 지역 원외 위원장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동조 단식에 나섰다. 평소 “삭발은 해도 단식은 못 한다”고 말해왔던 그의 단식에 의원들은 의원직 총사퇴를 불사하겠다며 호응했다. 그는 미디어법 처리 직후 이강래 원내대표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대여(對與) 투쟁의 전열을 다잡았다. 미디어법 처리 직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적시자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장외투쟁을 비롯한 다양한 대여 투쟁 방안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그에게 새롭게 주어졌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미디어법 처리를 성사시킨 공신으로 꼽힌다. 야당의 육탄 저지에 정면 돌파라는 강수를 둬 성과를 냈다. 안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도 민주당이 내건 국회 등원의 ‘5대 선결조건’을 일축하고 민주당의 등원을 유도했다. 박 전 대표의 ‘반대표 발언’으로 당에 파문이 일자 맨투맨 접촉을 통해 친박계를 설득하면서 박 전 대표의 제안도 발 빠르게 수용해 분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미디어법 처리를 계기로 그는 강력한 원내사령탑으로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었다’는 평을 듣게 됐다. 다만 급속히 냉각된 대야(對野) 관계를 푸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 남았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원내사령탑 취임 후 사실상 데뷔무대에서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는 미디어법 직권상정 처리 저지를 원내대표 자리와 연관시키면서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수적으로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강경한 목소리를 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패했다. 그는 미디어법 논의가 막판으로 치닫자 실력저지라는 물리적 충돌 대신 끝까지 협상을 강조하면서 싸울 명분을 축적해 왔지만 거대 여당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향후 대여투쟁을 통해 정국의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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