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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손실 희박하다더니…‘쪽박펀드’ 법정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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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손실 희박하다더니…‘쪽박펀드’ 법정에 세운다

한겨레  기사전송 2008-11-04 19:57 | 최종수정 2008-11-05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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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펀드피해 분노의 투자자들 ‘줄소송’ 조짐

“피같은 2000만원이 2만6천원으로”
소송준비 인터넷 까페 잇달아 개설

 

회사원 황호선(35)씨는 지금도 지난해 6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진다. 집 장만 하려고 한푼 두푼 모은 예금 4천만원의 만기가 돌아오던 때였다. 다시 예금에 넣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황씨에게 우리은행 직원은 두번이나 전화를 걸어와 “좋은 상품이 나와 있다. 일단 와서 설명이라도 들어 보라”고 설득했다. 직원 말로는 한국전력과 우리금융 주식에 투자하는 데 연 12% 이율이 보장된다고 했다. 혹시 주가가 45% 이상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한전과 우리금융이 공기업인데,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이 두 기업 주가가 그렇게 떨어지겠느냐’는 것이었다. 황씨는 2천만원을 투자했다.

 

가입 뒤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던 황씨는 지난 추석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나’ 해서 인터넷뱅킹에 들어가 봤다. 원금 2천만원이 260만원으로 줄어 있었다. 다음날 우리은행으로 달려갔다. “리먼브러더스가 발행한 이엘에스(ELS)에 투자한 펀드라서 리먼이 망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계좌에 2만6천원밖에 남지 않았다.

 

황씨는 “나는 주식, 펀드 한번도 안 하고 예금, 적금만 해왔던 사람”이라며 “왜 쌀집에 쌀 사러 간 사람에게 쌀은 팔지 않고 빵을 사라고 꾀어서 썩은 빵을 파느냐”고 말했다. 피 같은 돈 2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린 황씨는 그 뒤 은행, 자산운용사, 금융감독원 등을 쫓아다니느라 회사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 생활이 엉망이 돼버렸다. 은행, 운용사 쪽은 “펀드 손실은 보상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황씨는 4일 다른 피해자 216명과 함께 우리은행, 우리시에스(CS)자산운용 등을 상대로 투자원금과 이자 76억원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황씨가 가입했던 펀드는 ‘우리2스타 파생상품 펀드 KW-8호’로, 한전과 우리금융 주가에 연동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주가연계펀드(ELF)였다.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신아의 김형남 변호사는 “이 펀드 경우 단순히 불완전판매(상품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애초 이엘에스 발행사였던 비앤피파리바를 리먼브러더스로 바꾸면서 투자자들에게 전혀 공지를 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며 “심지어 판매사인 우리은행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황씨는 “리먼브러더스의 ‘리’자도 은행 쪽에서 들은 적이 없다”며 “이 소송에서 진다면 대한민국 사법체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분개했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휩쓸며 국민 재테크로 자리 잡았던 ‘펀드 열풍’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가 급락을 거치면서 ‘소송 대란’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소송을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가 잇따라 개설되고 변호사 사무실에는 소송 관련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수익을 좇아 무분별하게 펀드를 판매했던 은행들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4일에는 파생상품 펀드인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가입해 손실을 본 투자자 160여명이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황씨가 가입한 펀드와 비슷한 유형인 ‘우리2스타 파생상품 펀드 KH-3호’ 투자자들도 조만간 법무법인 한누리를 통해 법정 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역외펀드 선물환 계약 피해자들은 지난달 인터넷사이트 ‘중국펀드 선물환계약 피해자 소송모임’이라는 카페를 개설해 놓고 소송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형남 변호사는 “우리2스타 펀드 외 다른 파생상품과 관련해서도 소송을 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있다”며 “면밀한 검토를 거쳐 소송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는 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분쟁조정 신청도 올해 상반기 117건으로 집계돼 벌써 지난해 전체 건수인 109건을 넘어섰다. 문종진 금감원 분쟁조정국장은 “하반기 들어서는 신청 건수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증권사를 상대로 한 펀드 관련 소송은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소송사태는 2003~2004년 은행에서 펀드를 본격 판매하기 시작해 펀드투자가 대중화한 뒤 맞는 첫 주가 급락에 따른 것으로,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최상길 제로인 상무는 “은행들이 펀드 판매를 확대할 때부터 예견됐던 사태”라며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의 항의 사태를 몇 번 겪어 봤지만, 그런 경험이 없던 은행들이 너무 멋모르고 펀드를 팔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은행 관계자는 “왜 투자자의‘묻지마 투자’는 문제 삼지 않고 은행의 불완전판매만 지적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문종진 국장은 “묻지마 투자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상품을 팔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마치 초등학생에게 미적분 참고서를 ‘공부에 도움된다’며 꼬드겨 판 꼴”이라며 “이번 홍역이 은행들 사이에서 소비자 보호를 중시하는 태도가 자리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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