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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시에 합격한 비결은
[CEO꿈땀]고재영 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
글=박창욱,사진=최용민 기자 | 08/11 12:32
인생의 이치도 그렇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훌륭히 헤쳐나온 사람들은 삶의 지혜를 덤으로 얻는다. 그 지혜는 리더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한국환경자원공사 고재영(53) 사장의 성장기는 매우 힘겨웠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했다. 그런 모습은 그를 고위 공직자로까지 성장시켰다. 더불어 공기업의 경영자로 일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
# 고학
그의 집은 너무나 가난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집에 불이 났습니다. 안 그래도 가난했던 시골집이 완전 풍비박산 났지요. 중학교 시험을 볼 상황 자체가 못됐습니다."
1966년 3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청파동에 방을 얻고 효창공원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 공짜 과외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남들 공부 하던 곳에서 어깨너머로 배웠지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 배웠던 단어 하나까지도 모두 기억이 날 정도니까요."
그렇게 5달을 배웠다. "당시엔 중학교도 입시를 봤습니다. 1차 학교에 떨어지면 2차 학교에 응시하는 그런 제도였죠. 짧은 공부로는 1차 학교에 붙을 수 없었습니다. 2차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비록 명문고에 진학하진 못했다. 하지만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 학년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학년말에 늘 1등이었지만 중간에 모의고사를 치면 종종 3등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교 자체 시험에선 1등을 놓치지 않았죠. 형편이 어렵다보니 과외나 참고서는 꿈도 못 꿨고, 그저 교과서와 수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처음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길 원했다. "점수가 아슬아슬했지요. 가정형편이 어렵다 보니 재수를 염두에 둘 처지가 못됐습니다. 그래서 입학점수에 조금 여유를 두면서도, 공학을 공부할 수 있는 농공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재학 도중 군입대를 했다. "힘든 군생활을 하면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그렇고 그런 생활을 할 것같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결국 고시밖에는 없다고 뜻을 세웠습니다."
# 공직 생활
1977년 제대했다. 3학년에 복학한 1978년, 기술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 2차 시험도 붙었다. "이 당시에도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누나, 동생 둘과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땅한 공부방이 없었죠. 2차 시험 전날에도 제 옆에선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공부하기엔 최악의 여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덕분에 시험에 붙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가 잠깐 이불을 붙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도와드리긴 해야 하는데 잠깐의 시간도 아까웠죠. 그래서 기분도 전환할 겸, 학교에서 늘 배우던 책이 아닌 친구에게 빌려온 책을 이불을 잡으면서 곁눈으로 쭉 훑어봤죠."
그런데 그 책에 있는 내용에서 2차 문제가 나왔던 것. "당시 서울대에선 저 딱 1명이 붙었습니다. 대부분 다른 응시생들이 그 문제를 풀지 못해 과락을 맞았던 것이었죠."
80년 3월 환경청에 발령받았다. "무슨 일을 해도 대충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계발도 꾸준히 했습니다. 국비유학 준비를 위한 사무관 영어교육에서 수석을 했고, 중간관리자 과정에서도 1등을 했지요. 기왕 태어난 것 적극적으로 살자는 게 제 좌우명입니다. 지금도 영어는 물론이고 불어와 일어도 회화 정도는 가능합니다."
# 내 탓
환경부 환경정책실장(1급)을 끝으로 그는 지난 6월 한국환경자원공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다. 환경자원공사는 현재 폐기물과 관련한 대부분 업무를 맡고 있다. "전자산업에서 많이 나오는 인쇄회로기판(PCB) 처리 사업을 비롯해 감염성 폐기물 전자태그(RFID) 사업, 지정폐기물 적법처리 인증시스템, 생산자 책임재활용(EPR) 제도 등을 책임지고 있지요."
고 사장은 인터뷰 하기 전날까지 열흘동안 전국 52개 사업장을 모두 돌며 거의 대부분 직원과 만났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현재 주어진 여건을 탓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바뀌는 그 앞에 제가 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길 원했다. "이제 앉아서 맞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고객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영업을 펼치자고 했습니다. 모두 힘을 합치면 일류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직원 모두가 각자의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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