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 뉴요커, 브랜드에 관한 진실(1)
[패션으로 본 세상]문화의 겉모습만 모방해선 안 돼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 08/09 12:30
요즘 '된장녀'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혹자는 허영에 대한 일침이라 말하고, 혹자는 흔해빠진 여성
비하의 하나로 치부한다.
트렌드의 한복판에서 우리나라를 볼 때, 어쩌면 이 현상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말해주는 가장 조심스럽고
중요한 거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된장녀 타령을 하는 남자들이 모두 매너가 없거나 구식이거나 여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아님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트렌드는 트렌드이다. 만약 편파적인 혐오였다면 권력이 부추기지 않는 한 스스로 커다란
트렌드를 형성하긴 어렵다.
어쩌면 그들 중 대다수는 '남자가 여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평범한 가치관을 가진, 여성으로선 꽤 의지할
만한 남성들일지 모른다. 책임감있는 남성일수록 자신의 잠재적 소득수준과 멀찌기 떨어져 버린 여성들의 소비수준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혼란과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요소로 다가온다.
사실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것은 '된장녀'를 집요하게 욕하는 몇몇의 허술한 주장보다는
'이거 한 번쯤은 얘기해 볼 문제였어"라는 공공연한 동의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이다.
소비는 개인적 취향이라지만, 그렇게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무시한다고 존재하는 사회적 관념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선 객관적 사실을 짚어보면, '보편'과
'첨단'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
명품에 한해 이야기해보자면, 우리나라에서 명품을 자유로이 구매하고 생활화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엘리트 혹은 상류층들뿐이다. 이들은 사실 소수이며, 이들의 소비는 정당한 것이니 누구도 무어라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명품을 들고다니는 여성들만큼이나, 명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성들도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달나라 가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달나라엔 극소수만 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트렌드에 속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첨단이라는 것은 시대를 휘잡아 정의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지는 하지만, 시대의 보편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생각해보자. 달나라를 못간다는 보편적 사실에 분노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어떠한 경우에 통계는 우리로 하여금 사실을 직시하게 도와준다. 우리나라에서 젊은 성인 남녀에게 가장 많이 팔리는 옷은
명품이 아니라 '베이직하우스'와 '뱅뱅'이다. 이 두 기업은 의류 산업 내부에서 들여다보자면 모두 멋진 기업들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의 실체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그야말로 명품이 넘쳐나는 곳이다. 밀라노나 뉴욕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선 웬만한 직장 여성들은
명품을 우리보다 부담없이 구매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명품을 우리보다 높이 평가하거나 좋아해서라기 보다, 심플하게 우리보다 훨씬
부자들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CSI 뉴욕이란 외화드라마에서, 검거된 마피아급의 갱이 조롱하듯 수사관의 월급을 묻는 장면이 있었다.
'너 그렇게 일해서 얼마나 벌고 있냐'라는 비아냥에 수사대원의 답은 명료했다 '9만5746달러 32센트, 고생하며 일해서 얻는 댓가야'
그녀는 작다는 듯 이야기했고, 갱은 그 대목에서 코웃음을 쳤지만 우리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연봉은 한화로 1억
가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연봉에서 100만원짜리 핸드백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수준과는 당연히 다르다.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경제적
현실이다.
미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가 넘는다. 이태리도 북부만 보자면 많게는 5만달러란 말도 나올 정도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들이,특정한 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일반 백화점 브랜드에 지나지 않는다. 1만5000달러의 기로에 선
우리가 어떻게 그들처럼 소비할 수 있겠는가.
가끔 소비자 조사를 하다보면, 뉴욕이나 일본과 우리가 별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적잖이 보게 된다. 하긴 실제로 동경이나 밀라노, 파리에서 보게되는 도시의 분위기나 옷의 가격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 없으며, 서울 또한 그 어느
도시 못지 않은 도회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그들의 소득수준 차이는 현저히 크다. 우리가 비슷하다고 느껴야 할
나라는 사실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대만이지만, 대만을 방문해 본 한국 사람들은 '대만 잘 산다더니 뜻밖'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왜냐하면
타이페이는 서울처럼 화려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함께 처해있는 경제적 현실을 여성들이 과연 모를까, 하는 점이다.
여성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직관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한 번의 동경 여행으로 '우리나 일본이나 별 차이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가나 도시의 분위기를 빠르게 이해하는 직관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직관은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땐 본질을 간과하게 만들기도 한다.
된장녀 논쟁에서 '스스로를 뉴요커라고 착각하는 여성' 이란 말을 보고, 과연 우리는
뉴욕의 본질을 알고나 있는가라는 답답한 생각이 몰려왔다. 스타벅스를 마시고 패셔너블하게 사는 것이 뉴요커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큰
오해다.
화가 겐이치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뉴욕에 도착한 순간, 예술가는 낡은 웃옷을 훌렁 벗어던진다. 그곳에는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저력, 대담함, 이해력, 그리고 자유가 있다.'
뉴욕은 패션의 도시이기 이전에 매우 예술과 지성의 도시이다.
메트로폴리탄과 다양한 뮤지움, 브로드웨이가 있는 곳이다. 자부심 있는 뉴요커들은 전시회와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며 이 토양 속에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이 양성된다.
뉴욕 패션의 힘은 이 문화적 커뮤니티에 의해 비롯된다. 여기엔 '스타일리쉬'라는 얄팍한 감성 이전에 오랜
역사와 깊은 철학이 배어 있다. 다양함과 도전이 인정되고, 이들이 어떻게든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자유와 교양, 예술이 충만한 문화에 대한 흠모가 아니라면 우리는 뉴욕을 동경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뉴욕의 문화와 철학은 접어둔
채 스타일리쉬한 분위기만 가져다 흉내내는 것은, 본요리는 먹지도 않고 에피타이저만 먹은 뒤 잘먹었다며 나가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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