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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위기 노숙자 “빛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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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위기 노숙자 “빛이 보입니다”
[조선일보 2006-01-27 03:23]    


상담일지 통해 본 노숙인‘1대1 후원’
10여차례 만남, 수십차례 전화로 수술하게 도와줘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노숙인, 특히 겨울의 노숙인은 가슴 아프다. 서울복지재단은 작년 9월부터 공무원과 노숙인의 1대1 후견인 맺기 운동을 추진해왔다. 벌써 400쌍에 이른다. 어떤 교감(交感)이 이뤄지고, 어떤 성과가 있을까.

서울 노원구 하계1동사무소 황병조(여·47)씨의 ‘상담일지’를 들여다 보았다. 그동안 10번 넘게 만나고, 수십 차례 전화로 통화했다고 한다.

11월 3일 = 노숙인 형제를 만남

서울역 지하도. 잠자리를 준비하는 김구봉(가명·40)·구만(가명·30) 형제를 만났다. “주무시는데 춥지 않느냐”고 말을 붙였다. 경계하는 눈빛. 주변 다른 노숙인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잠깐만 얘기하자”고 청했다.

두 달 전 충남에서 상경해 노숙 2개월째. 둘 다 주민등록은 말소됐고, 형은 뇌신경망막파열로 실명위기에 처했다. 노동판을 전전하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시력이 나빠졌단다. 동생이 석 달 동안 모은 돈 20만원으로 진찰은 받았는데, ‘가망없다’고 했단다. 내일 노숙인 다시서기지원센타로 가 상담을 신청하라고 권했다. 내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

11월 7~11일 = 쉼터 입소와 수술

7일 형제가 영등포쉼터로 들어갔다. 시립동부병원에서 진료도 받게 됐다. 무료 진료. 안도감이 든다. 9일 동부병원은 “실명 위험이 있으니 시립보라매병원으로 바로 가라”고 했다. 형제는 안절부절 못했다. 다음 날 의료진은 빨리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11일 오후 6시 수술을 받았다. 퇴근하고 병원에 갔는데 이미 수술실에 들어갔다. 동생이 종일 굶은 채 초조하게 기다린다. 김밥과 라면을 사주고 교통카드·전화카드도 건넸다. 비상금으로 5000원을 줬지만 받기를 꺼렸다. 수술받는 것으로 일단은 만족하자고 말했다.

11월17일 = 형제의 우애

경과가 예상 외로 양호하다. 쉼터로 찾아갔다. 형제가 웃으며 맞이해 기뻤다. 이제야 마음들을 활짝 여는 것 같다. 알콜중독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 등 가족사도 털어놨다. 동생은 이날 막노동해서 번 5만3000원을 보여주며 좋아했다. 하지만 “일 나간 동안 형이 안약을 제대로 넣지 못할까봐 걱정됐다”고 한다. 우애(友愛)가 눈물겹다.

11월23일 = 회복

식사와 잠이 안정된 덕인지 얼굴색이 많이들 좋아졌다. 수술 결과는 반년 뒤에나 알 수 있는데, 2년이나 방치했던 터라 회복을 장담할 순 없단다. 그래도 형제는 “감사해유”만 반복했다. 포기했던 다른 눈도 일단 정밀 검사하기로 했단다.

1월25일 = 석 달짜리 일거리

동생이 중구 구민회관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서울시가 마련한 ‘노숙자 일자리갖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다음 달부터 석 달간 뉴타운이나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둘 다 너무나 좋아한다. “돈이 좀 모이면 방을 구하고, 정식 일자리도 찾겠다”고 말한다. 시력 회복을 기다리는 형은 “앞이 보이면 한글부터 깨치겠다”고 다짐한다.

(최형석기자 [ 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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