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인가
중부일부
게재일 : 2009년 07월 06일 (월)
여야 정치권이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두고 자신들의 입장과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우는 동안 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비정규직보호법 부작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 내 한 주물업체에 비정규직으로 4년여째 다니고 있는 남모(37)씨는 요즘 들어 실직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가 편치 않다. 3D업종 중 하나인 이 업체는 직원 50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비정규직이다. 남씨도 이 가운데 한 명이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임금 등 대우 면에서 정규직과 큰 차별도 없었고 지금처럼 당장 해고의 불안도 없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의 특성으로, 신규 직원들의 1~2년 내 이직률이 높은 회사 측에서는 처음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후 4~5년이 지나 성실한 숙련공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경영방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씨는 올 초 직장 상사로부터 곧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언질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1일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남씨의 고용신분은 과거보다 더 불안해졌다.
회사는 불가피하게 지금 있는 비정규직 직원 가운데 2년이 지난 직원들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해고를 해야 된다. 이 회사는 남씨와 같은 몇몇 숙련공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해고를 검토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숙련 근로자의 계속 고용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순 업무에 종사하거나 계절적인 수요로 일시적으로 채용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고를 선택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을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하기에는 여력이 없고, 이들을 해고할 경우 당장 공장 가동에 차질이 빚어질 상황에 놓인 중소기업들은 비정규직 숙련공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 내 두 중소기업체는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숙련공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동종 업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업체끼리 맞바꿔 신규 채용하는 ‘딜(Deal)제’를 내놓았다.
남동공단 내 금속업체인 A사는 기간제법(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비정규직 고용기간 2년 제한’이 발효된 지난 1일 비정규직 근로자 3명 중 계약기간이 끝난 2명을 해고했다. 이 업체는 월 150만원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2년간 성실하게 일하며 금형기술을 습득, 이 업종에서는 나름대로 ‘베테랑’으로 인정받게 된 비정규직 직원 김모(24)씨를 계속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근로자 3명을 둔 같은 업종의 남동공단 내 B사의 사정도 A사와 같았다. 동종 업종의 친목단체 모임에서 서로 알게 된 A사와 B사의 대표는 같은 처지의 어려움을 털어놓다가 고심 끝에 비정규직으로 계약이 끝난 A사의 김씨 등 2명과 B사의 비정규직 근로자 2명을 서로 맞바꿔 새로 채용키로 약속했다.
인천의 한 업체는 50여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파견근로 형식으로 새로 받아들여 고용을 유지키로 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 최대 2년에 걸린 비정규직 직원들을 일단 해고한 뒤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어 이들을 다시 파견근로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회사와 근로자가 짜고 무기계약을 하지 않은 채 계속 고용하거나 비정규직 근로자를 파견 근로자로 바꿔 지속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력이 안 되는 인천지역의 중소기업과 이들 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지금 비정규직보호법을 피해 나가 서로 살아남기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낳은 부작용들이다.
각종 통계결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올 한 해 동안에만 해고 위기에 놓이게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최소 4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천에서만도 수천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중소기업들도 당장 인력난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들이 생색내며 만들어 놓은 법으로 인해 생겨나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해 주는 데는 관심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주장과 명분 쌓기에 여념이 없다. 더 이상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가 생겨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될 문제다.
홍재경 정치부장(인천) /nice@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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