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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덕유산 종주 나홀로 산행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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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덕유산 종주 나홀로 산행 >下<
어머니 회초리같은 겨울산 매섭다 그러나 늘 그립다
2009년 01월 31일 (토) 경인일보webmaster@kyeongin.com

 

 

#매서워서 그리운 어머니의 손길

눈만 감은 채 어둠에 묻혀있다 일어난 탓인지 가뜩이나 작은 눈이 더 부었다. 성냥개비라도 끼워야 떠질 것 같은 눈을 비비며 저녁내내 시끄럽던 취사장에 들러 컵라면 하나로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먹은 것 없는 뱃속이 꾸륵거리며 생존신고를 해댄다. 야외 화장실에서 변(便)을 보다 추위에 변(變)을 당할 것 같아 참고 걸어본다. 인간에게 있어서 재생할 수 없는 두 군데의 근육중 하나인 항문 근육에 문제가 생길까봐서다. 의학상식이 풍부한 탓에 근육 하나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생각하며 실실거린다. 아무래도 뇌도 부었나 보다.

새벽 5시 20분, 아직은 어두운터라 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옷깃을 올리며 무룡산의 깊은 어둠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삿갓골재 대피소를 출발한지 30분 정도를 지났을까 바람이 무섭게 불어대기 시작한다. 어느새 눈까지 합세해서 몰아쳐대는 통에 잠시 멈춰서서 복장을 재정비해본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의 무룡산 정상. 익숙한 어둠과 새삼스러울 것 없는 눈보라 속에서 잠시의 여유를 가져보려 하지만 바람이 계속해서 채근을 해댄다. 1천491m의 무룡산 정상에는 그래서 나무 한그루 자라고 있지 않은가 보다. 완만하게 내려섰다 올라서기를 반복하는 동엽령으로 가는 길마다 나무 사이로 숨을 때는 그럭저럭 참을만 하지만 이내 낮은 나무지대나 바위를 지날 때면 눈보라에 노출되어 가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다. 바람이 불어대는 방향도 일정치가 않아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피해보지만 눈보라가 얼굴의 이곳저곳을 때려가며 갈피를 못잡게 한다.

등산스틱으로 균형을 잡아가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동엽령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30여분이 더 소요되었다. 동엽령에 설치되어 있는 쉼터 계단 아래로 몸을 숨겨 바람을 피하면서 간식을 먹는데 장갑을 벗는 순간 차가운 고통이 밀려온다. 장갑을 벗으면 바로 눈보라에 노출되어 손이 젖는데 그대로 장갑을 끼게 되면 장갑도 젖어버리기에 수건을 꺼내 손을 닦아보지만 배낭에서 나오는 물건들마다 눈보라의 습격을 받아 모두 젖어버린다.

손을 추위로부터 보호하려 애쓰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니 조금은 살만한 느낌이다. "그래 겨울산행에서 이정도 쯤은 애교지 뭐…"하며 애써 위로를 해보지만 혼자 계단아래 궁상떨며 앉은 모습이 내가 봐도 처량하기만 하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히죽이며 보온물통을 꺼내 따스한 물 한모금과 간식을 먹는데 지나던 사람들이 흘낏거린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놀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맞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프다. 하지만 그립다. 겨울산은 어머니의 회초리와 같으면서 역설적이게도 하이퍼 리얼리즘과 맞닿아 있는 그것이다.

   

#폭풍설에 가려진 능선과 등산객들의 비명

겨우 허기를 달래고 다시 배낭을 메니 바람에 몸이 휘청일 정도로 더욱 거세게 몰아쳐댄다.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라 바라클라바를 쓰고 스키용 고글까지 착용하니 한결 나아져서 지나는 등산객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아예 뒤돌아서거나 옆으로 걸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본다.

한편 반대편 방향에서 내려오던 일반 등산객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지나는데 다들 겁을 먹은 표정이다. 빨리 하산하라며 산악회 임원인 듯한 사람들이 채근하면서 서둘러 스쳐지나간다. 그 중에 12~13세의 아이들도 있었는데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겨울산행을 하면서 청바지에 운동화라니…' 어이가 없어 서둘러 세워 아이 손을 보니 이미 젖어서 말이 아니다. 배낭을 열어 수건으로 닦아주고 핫팩을 양손에 쥐어준 후 장갑 한 켤레를 끼워준다. 신발도 이미 젖어서 보온효과가 없기에 지나던 일행들에게 비닐봉지 두개를 얻어 마른양말로 갈아 신키고 비닐봉지로 씌운 후 다시 신발을 신겼다. 임시방편으로 발이 젖지 않게 한 것인데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하산을 종용하니 산악회 회원들이 연방 고맙다고 인사한다. 아이의 푸른 입술과 눈물이 잊혀지질 않아 돌아서서 한동안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백암봉을 오르는 길에 기억마저도 떨쳐내라며 눈보라가 악다구니 써댄다. 어딜 걷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조차 잊으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아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추위도 눈보라도 무뎌진다. 비로소 마음에 평온을 찾으며 덕유산의 겨울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겨울산행은 준비된 자에게 그 기쁨을 선사하여 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이런 날씨야말로 겨울 산을 제대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싶다. 기상청의 예보대로라면 해가 떴어야 옳을 것이지만 산에서는 준비만이 해결책이다.

송계삼거리에 서서 신풍령을 내달리는 백두대간의 길을 바라보며 한숨 쉬어간다. 마음껏 달리고픈 길이다. 4시간 정도면 신풍령에 닿을 무난한 능선길이지만 향적봉으로 가기 위해 중봉 방향으로 나아간다. 주저 없는 눈보라가 더욱 극성인 덕유평전에 이르니 일회용 우의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잰걸음으로 스쳐가며 비명을 질러대고 "집에 있으면서 마누라랑 영화나 보러 갔으면 이런 고생 안하는건데…"라며 지나던 중년의 남자가 중얼거린다.

# 북적이는 향적봉과 곤돌라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봉으로 오르는 덕유평전에는 눈이 없다. 눈이 쌓일 수가 없을 만큼 바람이 불어서이다. 등산스틱에도 눈이 달라붙어서 애써 떼어내지만 도로 달라붙는다. 카메라도 꺼내기가 무섭게 눈이 달라붙어 당최 떨어지려 하질 않는다. 추위로 배터리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핫팩을 붙였는데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눈을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으로 사진 찍기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렌즈 후드가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안고 중봉에 서자 눈보라가 절정에 달한다.

향적봉으로 나아가며 주목군락에서 잠시 눈보라를 피해보지만 몸을 주체하기 힘든 거센 바람이다. 높다란 철탑과 바람이 합작한 무시무시한 소리를 피해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서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대피소 곳곳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어 곧이어 오른 향적봉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곤돌라를 이용하여 설천봉으로부터 유입되고 있는 향적봉엔 마치 이때가 아니면 눈 구경 못할 것이라고 계시라도 받은 양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대부분이 안내산악회를 따라 온 것으로 보이는데 대개의 하산방향이 백련사쪽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산악회의 이러한 산행코스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르막 코스가 길어야 심폐기능과 근지구력이 생기는데 쉽게 올라와 긴 내리막을 가게 된다면 당사자들의 관절 수명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잡아야 옳다. 내리 꽂듯 뚝뚝 떨어지는 계단 길을 한 시간여 이상 내려서야 하는 길을 오르는 길로 선택하는 올바른 길잡이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설천봉에서 오르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곤돌라를 타고 오르려 기다리는 줄이 끝도 없다 한다. 내딛는 걸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간지러운 오랜 기억 속의 백련사로 향한다. 깨어지기 쉬운 불안한 평온이 맞아주는 겨울 산을 등지고 내려서니 눈보라가 빗줄기로 바뀌어 있다. 마침 수원에서 온 엘레강스 산악회 회원들이 백련사로 올라와 설천봉으로 하산하였다 하여 주차장에서 만나니 자아의 정체성이라도 찾은 모양으로 반갑기 한량이 없다.

14시간 소요 … 북쪽서 내려가야 유리
■ 덕유산 종주 가이드


26.9㎞에 이르는 거리로 평균 1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전라북도 무주군에 속한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향적봉~중봉~동엽령~무룡산~삿갓봉~남덕유산~영각사 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 장쾌한 덕유산맥은 겨울철에 많은 적설량과 상고대의 주목이 더욱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차량지원이 가능한 경우엔 이른 새벽에 시작하여 늦은 저녁에 끝마칠 수도 있다. 대개 향적봉 대피소에서 1박을 하거나 삿갓골재에서 1박을 하는 코스로 잡는다. 북쪽에서 내려가는 것과 남쪽에서 오르는 것과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차로 북쪽에서 내려가는 것이 유리하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는 향적봉 대피소와 동엽령, 삿갓골재, 남덕유산 참샘 정도이나 대피소의 경우 식수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생수를 판매중이다.

■ 대피소 현황

▲향적봉 대피소 : 수용인원 40명 현장예약만 가능하며 연락처는 (063) 322-1614

▲삿갓골재 대피소: 수용인원 45명 인터넷 예약만 가능하며 연락처는 011-423-1452

▲덕유산 관리사무소: (063) 322-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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