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사람과의 관계가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 어느 부인이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힘들다면서 상담을 원했다.
남편이 말을 하지 않고 회사에서 돌아오면 힘들다면서 TV만 본다는 것이다. 연애시절에 눈빛만 보아도 행복하고 가벼운 스킨십만으로도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단다.
관심을 보여주기 원해서 다가가도 소 닭쳐다보는 격이라 이젠 무안해서 다가가기 싫어진다고 한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머리카락도 빠져서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화가 났다고 한다.
무뚝뚝한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나서 자신도 무관심해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내고 싶었는데, 자꾸 화가 나고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자신에게 한심한 느낌이 들어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길 가다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는 부부를 보면 눈물이 났고,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했는데 지금의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에 힘들었다며 눈물을 쏟는다.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보니 필요한 말조차 나누기 힘들어 졌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화를 내거나 입을 닫는다. 화를 낸다는 것은 관계를 만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누가 싸움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따지고 화를 내는 사람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가면 나중에 갈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빨리 관계를 회복하려고 따지기도 하고 고함을 친다.
하지만 상대 배우자는 그 소리가 힘들고 비난받는 느낌이 들어서 도망가고 침묵을 한다. 침묵하는 사람은 말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을 하는 것이 싫다. 당장 싸움만 없으면 부부간의 갈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인이 따지는 것도, 남편이 말을 하지 않고 피하는 행동도 서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불화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래서 고립감을 느끼고 화가 나고 서로에게 실망을 하여 괴로워진다. 심하면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자녀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지신과 타인에 대한 생각이 정립된다. 부모와 좋은 관계를 경험한 자녀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타인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절제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부모 자녀간과 마찬가지고 부부관계도 그렇다.
앞에서 언급된 부인이 남편과의 관계가 자신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것이 싫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부부관계다. 그만큼 삶에 있어서 부부관계가 중요하다는 증거다. 화를 내거나 침묵하는 두 사람이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불화가 커져가는 이유는 초점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는 부인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편은 나누고 싶어 하는 부인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인이 말을 시작하면 도망가려 한다. 침묵하고 도망가는 남편이 문제라는 생각에 집요하게 화를 내는 부인은 남편이 감정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워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도망가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밝혔지만 화를 내고 침묵하는 이유가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인지를 밝히는 것은 부부관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면 서로의 실망감과 거부 받는 느낌은 커져간다. 침묵하는 배우자나 화를 내고 있는 배우자 모두 원하는 것이 있다. 인정해 주는 말과 부드러운 정서의 교류다. 가을에 가장 중요한 사람인 가족, 부부관계가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이 악해서 주는 상처보다 몰라서 주는 상처가 부부간에 더 많다는 것을 상담하면서 매일 느낀다.
하지만 몰라서 주는 상처가 더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아프다고 얘기를 해도 왜 아픈지 몰라서 외면하고, 아파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탓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물론 남편이 따뜻한 말과 정서적인 교류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부부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서로 행복한 부부뿐만 아니라 이혼을 생각하면서 상담을 하러오는 부부도 그랬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의 위로가 필요하긴 한 건가라고 생각하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화만 내거나 입을 닫아서 서로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만이 부부관계가 활력을 회복하고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다. 부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박성덕/용인정신병원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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