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연구기관들은 2005년보다 높은 5%
안팎의 성장률로 ‘비교적 맑음’ 진단
내수 회복세로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 완화돼 체감경기도 좀 따뜻해질 듯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경제 전망은 틀리기 위해 있는 것이라지만, 새해를 맞으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살이 점괘에 귀를 쫑긋거리게 되는 건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하루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바삐 돌아가는 마당에 1년 앞의 판세를 내다보는 게 쉬울 리 없다. 경제연구기관들의 전망 작업은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헛된 수고가 아닐까? 한 해를 지내고 나면 ‘또 틀렸네!’라는 가혹한 평가의 골짜기로 굴러떨어질 운명의
무의미한 헛수고….
2004년 12월에 나온 각 경제연구기관들의 ‘2005년 전망’을 되짚어보니, 경제 전망 작업이 그래도 시시포스의 헛된 노고쯤으로 여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LG경제연구원은 12월14일 2005년 성장률을 3.8%로 전망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는 훨씬 전인 8월부터
3%대(3.7%) 성장률을 제시해놓고 있었다.
보수적인 삼성경제연구소도 높은 전망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0%로 제시하면서도 정부의 종합투자계획이 성장률을 0.2%포인트가량 높이고 있다고 분석함으로써
사실상 3%대 후반의 성장을 전망했다. 이는 정부가 목표로 잡은 2005년 성장률 5%대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라 당시엔 논란을
낳았는데, 결과적으로 2005년의 실제 성장률(3.9%로 추정)에 견줘 상당히 정확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들 연구기관의 ‘2006년 전망’은 예외 없이 ‘비교적 맑음’이다. 2004년 8월 이듬해 성장률을 3%대로 제시했다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삼성경제연구소는 2006년 성장률을 4.8%로 전망했다. KDI와 한국은행은 새해 성장률을 5%로 전망해 삼성경제연구소보다 좀더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비교적 높은 5.1%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한때 두 자릿수 성장을 구가하던 역사적 경험을 생각하면 5% 안팎의 성장률은 감질맛 난다고 할지 몰라도 3%대의 2005년에 견줘선 상당히
좋아지는 셈이다. 한국 경제가 물가 불안을 겪지 않고 실력껏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잠재성장률)가 5% 안팎이라는 데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5%라는 수치는 물가상승률(2~3%)을 감안한 실질성장률이어서 명목상으로는 7~8%에 이르는 수준이다.
성장률 전망치는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일반인(소비자)의 주머니 사정과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정을 잠깐 제쳐두고,
보수적인 전망치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삼성경제연구소까지 비교적 낙관적인 수치를 내놓고 있는 근거를 먼저 들어보자.
“수출 실적이 예상보다 괜찮아서 내년에도 8~10%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05년 하반기부터 내수가 살아나 흔히 양극화라
부르는 ‘수출-내수 분리 현상’이 완화될 것이다.”(홍순영 경제동향실장)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내수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이 설명에서 방점은
‘내수 회복’에 찍혀 있다. 이는 2006년의 경기 흐름이 2004년, 2005년과 차이를 보일 대목이기도 하다.
한 나라 경제를 단순화하면 수출과
내수(민간소비+정부소비+설비투자+건설투자)라는 두 바퀴가 굴려가는 수레다. 기업이 만든 물건이 국내에서 팔리면 내수, 국외에서 팔리면 수출이다.
그런데 2005년 상반기까지 우리 경제는 수출 쪽 바퀴만 열심히 굴러가는 극심한 불균형 구조였다. 내수의 핵심 항목인 민간소비는 2004년에
0.4% 줄었다. 2년 연속 감소세였다. 소비가 전년보다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때나 있던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수출(상품)이 2004년에
무려 21.0%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데 이어 2005년에도 두 자릿수(10.1%로 추정)를 달성한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가계 부채 늘었으나 질적 개선 이뤄져
이러다 보니 2004년의 경우 경제성장률에 대한 수출과 내수의 기여도는 6(8.9%포인트) 대 1(1.5%포인트)로 수출 쪽에 한참
기울었다. 2005년의 성장 기여도 역시 2(4.6%포인트) 대 1(2.3%포인트)로 수출 일변도였다. 여기서 비롯된 (수출 위주의) 대기업과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는 노동시장을 매개로 소득 양극화로 이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전망대로라면 올 상반기까지 삐거덕거리던 내수 쪽 바퀴도 수출 쪽과 보조를 맞추며 굴러갈 것이란 얘기가 된다. 다른
연구기관들의 관측도 비슷하다. “건설투자 부진에도 불구하고 소비 회복이 뚜렷해지고 수출이 두 자릿수의 견실한 증가세를 지속함에
따라….”(한국은행) “2006년 상반기에는 내수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5%대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하반기에는 수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하면서
4%대 후반의 성장률을 나타낼 전망이다.”(KDI)
표현에 약간씩 차이가 있어도 2005년 하반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가 전체 내수를 이끌고 성장률을 밀어올리게 될 것이란 분석의 줄기는
같다. 한국은행 전망대로라면 2006년 성장에서 수출과 내수의 기여도는 1.5(5.5%포인트) 대 1(3.8%포인트)로 추정된다. 여전히 수출이
이끄는 성장이긴 해도 두 바퀴의 균형은 그럭저럭 갖춰가는 모양새라고 볼 수 있다.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에 고용의 90% 정도가 몰려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체감 경기가 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민성기 한국은행 조사총괄팀장은 “소비는 이미 회복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서비스업의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고용 증가를 불러와 소득을 늘리고 다시 소비를 증가시키는 선순환 고리를 형성할 것이란 설명이다. 2004년까지 2년 연속
뒷걸음질쳤던 민간소비는 2005년 들어 1분기(1.4%), 2분기(2.8%)엔 미약한 증가에 머물다 3분기부터 4%의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6년 상반기에는 4.4%, 하반기에는 4.6%의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민간소비 동향은 두 자릿수대의
증가세를 이어갈 수출과 함께 2006년 경제를 나란히 떠받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5년부터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과, 가계의 부채 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점은 가계의 소비 여력이 있다는 분석을 낳는다. 가계의
부채 구조가 소비에 끼칠 영향을 놓고는 엇갈리는 의견이 있다. 부채 규모가 크게 늘어 소비를 제약할 것이란 분석이 부각돼 있는 것이다. 개인
금융부채는 2005년 6월 말 532조6천억원에서 9월 말 548조원으로 2.9%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금융자산은 1099조6천억원으로 1.7%
증가에 그쳤다. 자산-부채 증가세로 보면 소비 여력이 더 줄어든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개인 부채의 질적 개선이 이뤄져 소비를 크게
제약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연체율이 2004년 평균 2.2%, 9.0%에서 2005년 9월 말 1.7%,
7.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개인소득에서 지급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8.5%에서 8.3%로 낮아졌다.
민성기 팀장은 이를 두고 “가계의 빚은 늘었어도 갚을 능력이 된다는 뜻이고, 은행 처지에선 대출해줄 여력이 그만큼 있다는 얘기”라고
풀이했다. 민 팀장은 “일부에선 신용불량자 문제를 들기도 하는데, 더 이상 늘지는 않는 추세이고, 이미 은행에서 충당금을 쌓아놓은 터여서 그
문제에 따라 민간 소비가 제약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의 저력은 계속된다
소비 회복세에 더해 수출이 2006년에도 꿋꿋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의 근거는 주로 2005년에 보여준 저력 때문이다. 2005년
한 해 수출(상품)은 10.1%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애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년 20%를 웃도는 증가세를 내보인 데 따른
반사적인 효과로 두 자릿수 증가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05년 한 해 환율이 연평균 10%가량 낮아져(원화 절상) 수출
업체에 대단히 불리한 여건에서 이룬 실적이다. 홍순영 실장은 “이런 악조건에서 10%를 웃도는 수출 증가세를 기록한 것은, 정보기술(IT),
자동차, 철강 등 주력 품목에서 우리 업체들이 일정한 품질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며 “세계 경제가 조금 내림세를 보이더라도 수출은
새해에도 10%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엔 내수와 수출이 비교적 고르게 성장할 것이란 이런
낙관적 관측 앞에도 돌부리는 남아 있다. 국제유가가 치솟고 환율이 요동치면 전망은 흔들릴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은행 전망의 주요 전제 가운데
하나는 원유 도입단가가 배럴당 55달러에 머문다는 것인데, 이를 넘어서는 돌발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또 거시적 전망이 그대로 맞는다고
해도 미시적(가계) 살림살이까지 고루 펴질 것이라고 보기도 당장은 어렵다. 다만, 내수 바퀴 쪽에 앉은 이들에게도 온기가 좀 전달될 것이란
제한적 기대를 해볼 수는 있겠다.
집값은 여전히 불투명
전문가들마다 엇갈린 전망, 변동폭은 작을
듯
새해의 전반적인 경제 성장률 관측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성을 띠고 있는 반면, 집값 전망은 많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8·31
대책(2005년)에 따른 영향부터 부동산 시장 전반의 등락까지 일치된 견해를 찾아보기 어렵고 들쭉날쭉이다.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인 부동산114의 김희선 전무는 “변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서울 강남권이나
용산, 목동 등 인기 지역의 경우 아파트 추가 공급이 별로 없어 떨어진다고 보긴 어려워도 8·31 대책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으로 서울 외곽
지역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김 전무는 “이사철에 수요가 일시에 몰리거나 매물이 안 나오면 강세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는 약보합세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곽창석 부동산퍼스트 전무는 “서울 강남권과 목동, 경기 분당, 판교, 용인, 과천 등 중산층 선호 지역이 여전히 강세를 보일
전망”이라며 “그 외 지역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적으로는 소폭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곽 전무는 “8·31 대책에 따른 세금 중과가
주택에 대한 가수요는 잡겠지만, 양도소득세가 높은 지역의 매물을 끊는 반작용을 불러온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남희 닥터아파트 시황분석팀장도 상승세를 보일 것이란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 팀장은 “매매가격이나 전세의 상승률은 올해보다 낮아도
전국적으로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그 이유로 “새해 입주 물량은 2000년 이후 최대라고 해도 수도권에선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을 들었다. 2006년 입주 물량은 전국적으로 27만5천 가구에 이르는데,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경우 13만6779가구로
2005년보다 10.2% 줄어들 전망이다. 지방은 13만9천 가구로 전년보다 무려 19.2% 늘어나는 수준이다.
집값 전망을 둘러싼 엇갈리는 관측 속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변동 폭은 작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정부·여당의 바람과는 달리 집값 상승을
점치는 쪽도 소폭의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닥터아파트는 새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의 상승 폭은 2.5%로, 2005년(10.1%)보다
크게 낮춰잡고 있다. 서울 지역은 3%, 경기는 1% 상승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8·31 대책에 따른 가수요 감소라는 하락 요인과, 강남권
재건축·판교 신도시 분양·뉴타운 개발 등 상승 요인이 힘을 겨루는 한 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