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유용한 정보들/▩ 有用한 情報 및 잠깐 휴식을...

안중근 사형선고일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아니다 '안 의사를 기억하자!'

반응형
BIG

안중근 사형선고일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아니다 '안 의사를 기억하자!'

TV리포트 2012-02-14 17:34:45

 


 

[TV리포트 손효정 인턴기자]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이기도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하다. 


14일 각종 SNS에서는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가 아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자’는 내용의 글이 전파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인 1910년 2월 14일에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 판사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았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며칠 전 그는 정근 공근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유언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3월 26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 내 산하에 안장시켜달라고 마지막 바람을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정부는 2008년 3월부터 4월까지 ‘한·중 안중근의사 유해발굴단’을 구성해 뤼순감옥 인근 야산에서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망국의 한’을 품고 순국한 안 의사의 유해를 끝내 찾지 못했다. 


이에 누리꾼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분홍빛 상술보다 안중근 의사의 넋을 기리자” “밸런타인데이..안중근 의사 사형 선거일.. 둘 다 슬픈 일” “SNS의 전파력은 대단하다” “앞으로는 2월 14일에 안 의사를 떠올리겠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안 의사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은 잘못된 것” “오늘을 기억하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손효정 인턴기자 shj2012@tvreport.co.kr

===============================================================================================

 

德岩 덕암 칼럼
초코렛과 흰국화의 선택

안산인터넷뉴스 2014-02-03 오전 4:14:34

성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 밸런타인 주교가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이라는 주장과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믿은데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초콜릿을 보내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발렌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밸런타인데이 =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써의 일본식 밸런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크게 호응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부 젊은이들을 들뜨게 만드는 축제(?)로 변모했다.

 

일본의 초콜릿 상술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 최근 SNS를 타고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선고 받은 날을 물 타기(?)하기 위한 고도의 계략이 감춰져 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특히 발렌타인 데이를 축제 분위기로 들뜨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일본 상인들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반일감정은 더욱 가속도가 붙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되짚어보는 예의정도는 갖춰야하지 않을까. 190910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그 다음해 214일 일본인 판사로 부터 사형을 선고를 받았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326일 순국했다.

 

물론 엄숙해야할 이날 초코렛 상자를 들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모르면 몰라도 알고도 외면한다면 지금이나 훗날이나 누가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을까.

 

어쨌거나 누굴 탓하겠는가.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송할 일이다. 듣거나 말거나 한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조차 챙기지 못하는 나라가 어찌 번영하길 바라겠는가.

 

안중근, 187992일 황해남도 해주에서 태어나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를 중국대륙에서는 영웅으로 추앙하며 대륙의 작은 나라에 큰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스스로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임을 밝혔다고 한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 한. 일 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사상적 측면으로는 애국심의 발로가 저격의 각오를 갖게 했다는 추론이 나온다.

 

1910326일 오전 10시 뤼순(旅順)에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옥중에서도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 200점을 남겼다.

 

과거 애국 열사들의 나라사랑이 없었다면 지금도 일본의 식민지거나 속국이 되어 온갖 수탈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안 의사의 어머니가 보낸 옥중편지의 내용을 현재 대한민국 국민 중 몇 명이나 함께 할 수 있을까.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 한국사람 전체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알면 한 번 더, 모르면 깊이 새겨 읽어야할 대목이다.

 

끝으로 안 의사가 순국 직전 남긴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장한 호국의지는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영웅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이 날 만이라도 가까운 충혼탑에 들러 흰 국화 한 송이를 준비하는 마음이 더 아름다운 나라사랑 아닐까. 가족단위라면 더욱 뜻깊은 날이 될것으로 사료된다.

 

德岩 덕암 김범식

 

상기 기사는 경기도 광역주간신문 서부뉴스 2014년 2월 10일자(제200호)와 포털싸이트 daum(뉴스-안산), 경기도 지방일간신문 경인매일에도 함께 보도돼 언론의 기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뉴스로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안산인터넷뉴스는 공공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중심의 운영체제로 언론의 자유를 중시합니다. 시민의 눈과 귀로 함께 만드는 언론이 되겠습니다.

제보 : kyunsik@hanmail.net

김범식(kyunsik@hanmail.net)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