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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철수 박경철의 청춘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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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분노한 20 · 30대 내년 선거에 대거 몰릴 것"

입력 : 2011.08.06 15:41 / 수정 : 2011.08.07 00:33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 고용창출 안 된다”
“젊은이들 고용률 OECD 최저”
“젊은이들은 불평 말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정치 입문? 십고초려하면 모를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일보빌딩 6층의 안철수연구소는 좀 어수선했다. 잠시 후 만난 박근우 커뮤니케이션팀장은 “10월에 판교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무실 벽 한쪽에는 판교 신사옥 건물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번듯한 사옥이었고, 판교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안철수연구소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1995년에 설립한 국내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로 유명하다. 안 교수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박 팀장은 “안철수 박사님에 대한 강연 요청이 1년에 3000건 정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안 교수의 인기가 높은 줄은 짐작했으나,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원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교수는 검은색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방에 들어왔다. 동안(童顔)이었고, 피부는 우윳빛에 깨끗했다. 196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쉰인데, 그리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머리칼도 검었다. 그는 부끄럼을 타는 성격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 교수의 부드러운 말투 속에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묻어났다. 안 교수는 “공정사회와 상생은 대통령이 꺼낸 화두인데 화두만 꺼내고 후속조치가 없으면 분노가 더 커진다”고 했고, “우리 사회 20·30대에겐 상생이 안 되는 데 대한 분노의 에너지가 많이 쌓여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최선책은 결정권자들에게 달려 있는데 그게 안 되면 대중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선거 참여율이 굉장히 높아질 것 같다. 20·30대 투표율이 50%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때로 격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등 안 교수의 말에선 굉장히 강한 분노가 느껴졌다. 기자가 ‘분노가 느껴진다’고 했더니, 안 교수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원래 말을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안 교수는 또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상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계층 간 이동가능성이 완전히 닫히는 그 순간 나라가 망한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시장이 불공정한데 정부가 감시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불공정거래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뒷짐지고 있다. 지금은 무법천지다. 약탈 행위가 일어나는 무법천지를 정부가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연예인 수준으로 지명도가 올라갔다. 얼굴이 알려져서 영화도 맘 놓고 보러 가지 못한다고 얘기했던데.

“사는 게 참 불편하다. 적성에 안 맞는다. (안철수연구소) 사장 끝나고 교수로 돌아갔을 때 예전같이 언론에 날 일도 없어 맘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불편하다.”
   
- 직함만 20개를 갖고 있다. 이 시대가 안 교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잘해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거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주식으로 따지면 주가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선(先)반영된 거라고 할까. 그런데 지금보다 더 뭘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웃음)”
   
- 의사, 소프트웨어회사 경영자를 거쳐 지금은 교수다. 경력 중 어떤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안 교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고 보나.

“성과물보다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본다. 우선 개인적으로 한번도 도중에 그만둔 적이 없다. 의사도 박사 학위를 받고 의대 교수까지 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도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몇 사람 중 하나이고, 경영자로서도 안철수연구소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회사로는 가장 크다. 교수는 진행형이다. 과정 중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았다. 다른 선택을 할 때도 단순한 욕심이나 돈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진심이 전달되었다고 본다.”
   
- 주간조선이 지난 5월 16~22일자에서 안 교수를 커버 인물로 했다. 기사 제목이 ‘왜 안철수인가’였다. 왜 이 시대는 안철수를 필요로 하고, 젊은이들은 왜 안철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멘토로 꼽는데, 이유가 뭘까.

 “교수란 직업의 영향도 있다. 교수가 되어 20대 초반 젊은이들과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이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정년보장을 받고 카이스트에 갔다. 늦은 나이에 연구한다고 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왔던 사회공헌 활동을 계속 열심히 해달라, 카이스트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맞춰 저 역시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했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교수가 됐고, 이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 보니 가르치는 학생 말고도 많은 학생이 면담 신청을 해왔다. 거의 절반쯤은 내게 찾아와서 말하다가 운다. 얼마나 믿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면 그렇겠나 싶었다. 저도 20대에 했던 고민들이다. 
   
그러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학생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강연 요청을 1년에 3000건 정도 받는다. 매일 열 건씩 받는 셈이다. 1년에 80회 정도 외부 강연을 한다. 맡은 일도 있고 해서 한계가 그 정도다. 강연장에는 청중 수가 제일 적을 때가 1500명 정도, 많으면 3000명이 넘어간다.”
   
- 최근 인상적이었던 강연을 꼽는다면

 “대전 충남대 강연에 3000명이 왔다. 학생들이 와서 앉다가 자리가 차니 계단에 앉게 되고, 계단도 차니 그 다음에는 강연장 강단 위로 올라와서 앉았다. 제가 사진이 있다.”(안 교수는 휴대폰(아이폰 3G 모델)을 꺼내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안 교수와, 같이 대담하는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의자에 앉아 있고, 강단 위의 바닥에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 놀랍다. 이렇게 많이 학생들이 몰리다니.

 “광고를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미리 접수를 받는다. 광고를 안 해도 이렇게 많이 온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 열망을 가지고 있고, 또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집트에 민주화운동이 진행된 이유가 결국은 청년실업 때문이라고 하더라. 어떤 사회든지 청년실업률이 25%가 넘어가면 체제가 전복된단다. 우리나라가 명목상으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청년실업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청년고용률로 넘어가면 문제가 다르다. 지난번에 한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청년고용률이 OECD 국가 중에서 꼴지였다. 심각하다. 이게 더 심해지면 체제 전환도 된다. 왜 이런 것에 관심을 안 두는지 모르겠다. 제 강의에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것이 그 관심의 반영인 것 같다.”
   
- 언제부터 ‘청춘콘서트’를 해왔나.

“3년 됐다.”
 

충남대에서 열린 안철수 교수와 의사 박경철씨의 대담. 강단 위까지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photo 안철수
 
- 어제(7월 25일) 춘천대 강연에서는 어떤 말을 했나.

“박경철 원장과 대담을 하며 전국을 다닌다. 둘이서만 얘기하면 식상하고, 재미없으니까 항상 게스트를 한 명 초청한다. 나름대로 전문성 있는 사람을 부른다. 어제는 주철환 PD가 왔다. 그분이 꿈에 대해서 말했다. 재밌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이런 얘기였다. 사회문제 전문가가 오면 사회문제를 얘기한다. 어제는 게스트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 젊은층의 고민이 무엇인가.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뭐가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사회에서 주어지는 트랙별로 가는 게 썩 내키지 않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거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적성과는 상관없이 그냥 능력이 돼서 고시 공부해서 공무원 되고 의사 되고 한다. 그 자체도 자신에게 불행한 선택이다. 카이스트는 서울대와 같이 그나마 형편이 나은 상태인데도 그 학생들이 울기까지 했다. 그러니 다른 학생들은 오죽 하겠나?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공부 잘하는 학생, 능력 있는 학생들이 도전정신을 가지고 모험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능력 있는 학생들은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제2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들보다 차순위에 있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맞다. 근데 한국은 제일 스펙 좋고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가장 안정적인 쪽으로 간다. 그러면 사실 나머지는 어디 갈 데가 없다. 이게 전체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구조인 것 같다.”
   
-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곳에 가려는 건 당연하지 않나.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으면 일단은 도전한다. 월급 받을 생각 안 하고 일에 몰두한다. 열심히 해서 남 주는 일보다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한국인처럼 세계에서 가장 독립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사회 모순이 더 큰 힘으로 억눌러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게 현재의 모습이다. 젊은 사람들은 여기에 깔려 있다. 그것도 가장 아래에.”
   
- 사회적 모순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

“예를 들면 일자리인데, 사람들이 절망한다. 대기업 일자리가 지금까지 200만개를 넘은 적이 없다. 작년엔 더 줄었다. 내용을 보면 더 처참하다. 작년에 늘어난 대기업의 일자리 대부분이 신입 직원이 아닌 경력직이다. 중소기업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길러놓은 직원들을 대기업이 연봉 천만원 더 주고 데리고 온 거다. 나라 전체로 보면 고용 창출을 한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을 했다. 공무원은 조금 늘어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두 개를 합하면 300만명이다. 예를 들어 5000만명 중에서 2500만명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대기업과 공무원을 제외하고 2200만개가 필요하다.
   
   이건 다 중소기업이 해야 한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이익을 못 내게 하니까 고용을 더 확대할 여력이 없다. 기존의 직원들도 월급을 못 준다. 마지막 남은 탈출구가 창업인데, 새싹들을 짓밟는 우리나라 대기업 때문에 이것도 안된다. 대기업이 빨아들이는 것이 무섭다. 청년들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대기업이 만드는 일자리 200만개 중에 새로 나오는 것 일부와, 고시 공부를 통한 공무원 자리, 그것밖에 없다.”
   
- 젊은이들에게 강연할 때 사회구조가 잘못되어 있으니 방법을 찾아 고쳐 보자고 한다고 들었다. 뭘 얘기하나.

“사회구조를 바꾸는 가장 최선책은 기존의 결정권자들이 바꾸는 것이다. 그게 제일 좋다. 사회적 무리도 없고, 비용도 제일 적게 든다. 그게 안 되면 차선책이다. 차선책은 대중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문제 해결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결국 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놀랐다. 안 교수가 대중적인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 대중적인 문제 해결책은 무엇이 있나.

“대중이 움직여서 하는 방법 중에 제일 비용이 적게 드는 건 선거다. 내년에 선거 참여율이 굉장히 높아질 것이다. 20·30대 투표 참여율이 50%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 20·30대가 전체 인구 중 비중이 가장 크다. 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달라진다.” 
   
- 왜 젊은이들이 내년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하나.

“자기들을 무관심하게 내버려둬서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많이 퍼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제가 접한 것은 전 국민의 조그만 샘플에 지나지 않지만 최소한 제가 접한 사람들은 다 그렇다. 전국 강의를 하면서 들어보면 그전에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하다.”
  
-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긴가.

“일자리도 고쳐야 할 부분 중 하나이다. 사실은 어떻게 하면 이 양극화를, 해소는 꿈 같은 이야기고, 최소한 심화되는 것만이라도 멈추게 할 수 있는지,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공정은 대통령이 꺼내신 화두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상생도 대통령이 꺼낸 화두다. 사실은 상생이 가장 중요한 화두다. 근데 화두만 꺼내고 후속조치가 없으면 분노가 더 커진다. 차라리 안 꺼내는 게 낫다.”
   
- 우리 사회에 상생이 안 되는 것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가 많이 쌓여 있나.

“물론이다. 20·30대가 가장 심하다.”
  
- 이대로 가면 세대 간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50대와 20대가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을 벌일 수 있다는 게 그중 하나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갈등도 한 예다.

“그게 만약 벌어진다면 대리전이다. 주범들은 다 뒤에 숨어 있는데.”
   
- 사용하는 단어가 격하다.

“구어체이기보다 글 쓰듯이 말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다.”

- 우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핵심이 무엇인가.

“우리의 현재 시스템은 기득권 과보호 시스템이라 별 노력을 안 해도 갖고 있는 파워로, 시장지배력으로, 일등을 유지할 수 있다. 별로 노력 안 하고 이익 많이 내고 그러다가 결국 실력이 뒤처져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못 이겨 어렵게 되고, 국민 세금으로 그걸 유지해주고, 이런 악순환의 사이클에 들어 있다. 그걸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로마가 망할 때도 그러더라.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상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계층 간 이동가능성이 완전히 닫힐 때, 그때가 나라가 망하는 순간이다.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가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이다. 나는 옛날 사람에 비해 훨씬 많이 알고 능력도 뛰어나고 그래서 나한텐 저런 일이 안 생긴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역사를 반복하게 한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 대기업 과보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시장이 불공정한데 정부가 감시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불공정거래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뒷짐지고 있다. 여러 가지 규제가 풀어지는 것은 좋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주의자이다. 축구 경기를 할 때 규칙이 너무 많으면 선수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고 있는 관중들도 재미가 없으니 규칙을 간단하게 한다. 이것은 좋다.
  
   근데 규칙을 간단하게 하는 것이랑 심판을 철수시킨다는 것은 다르다. 규칙을 간단하게 해놓고 심판이 아무도 없으면 거기서 반칙을 한들 누가 막을 수 있겠나. 약탈 같은 불법 행위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볼 만한 게임이 안 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 금산(金産)분리도 완화하고 출자총액제한도 풀리고 있다. 거기에 따라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감시기능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근데 감시기능은 오히려 약화하거나 그대로 두고, 규정도 없으니 지금은 뭐 무법천지다. 약탈 행위가 일어나는 무법천지를 정부가 방조한 거다.” 
   
- 강남좌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념 논쟁은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외국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이념 논쟁을 지금까지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같을 순 없으니까,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니까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현실이 더 절박한데, 제가 이과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념 논쟁을 할 때가 아니고 미래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이념 논쟁에만 휩싸여 있다. 편을 나누는 분위기에 약간 분노를 느낀다. 이념 논쟁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본다.”
   
- 주간조선의 젊은 독자들에게 한 말씀해 달라.

“불평이란, 우리의 인생을 가장 좀먹는 존재인 것 같다.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되고 자기에게 해가 된다. 불평이란 그냥 앉아서 누구 탓만 하는 거다. 문제해결을 남한테 던져주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불평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 자신에게 주어졌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산다면 결국 자신에게 보탬이 된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그 상황을 탈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장을 못 구했다고 불평을 하기보다는 직접 창업에 뛰어들든지 다른 쪽으로 노력을 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노력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젊은이들 대상 강의에서 강조하는 내용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 정치권에서 안 교수를 탐내지 않나.

“10년 전부터 그래 왔다. 제가 (서울) 수서에 살 때다. 30대 후반 때인데, 국회의장 지냈던 분이 찾아와서 국회의원 제안을 했다. 총선 때마다, 지금 벌써 세 번 이상 제안을 받았다. 서울시장 후보, 장관 후보, 위원장, 청와대 수석까지 종류별로 다 받았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나이가 그쪽 비슷하게 접근해 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뜻이 맞는 대통령이 삼고초려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던데.

“삼고초려가 아니고, 십고초려였다. 그 말을 했던 이유가 자존심 센 사람들이 두 번 이상 부르는 경우도 별로 없었고, 더구나 열 번은 아무도 안 부를 거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안 교수의 사진을 찍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박 홍보팀장은 넓은 사무공간 한쪽 구석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안 박사님이 가끔 오시면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냥 툭 터져 있는 공간 한쪽일 뿐, 회사 창업자이자 대주주, 이사회 의장의 공간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안 교수는 판교로 사무실을 옮겨간다고 하며, “거기는 아예 사장 방도 없다. 여기는 사장 방은 있는데, 거기 가면 아무도 방을 못 가진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사장 방을 없애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된다. 사장이라고 해서 높은 사람이 아니며, 여건만 다른 사람인데 뭐 따로 있을 필요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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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재능 기부, 소통하는 ‘청춘 콘서트’
 
2011 08/09주간경향 937호

 

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강연을 유치할 확률이다. 그는 1년에 3000건 정도의 강연 요청을 받는다. 그 중 80여건을 수락한다. 여건상 그 이상은 하기가 어렵다.

6월 29일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한국의 미래와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청춘콘서트가 열렸다. / 연합뉴스

 


그가 강연을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강연에 참석하는 인원 수가 가장 중요하다. 제한된 시간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업에서 주최하는 강연은 가급적 피한다. 기업은 강연자에게 강연료를 많이 주는 편이니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좋은 강연자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요즘은 주로 지방으로 강연을 다닌다. 모두 무료 강연이다. 재능 기부인 셈이다.

안철수 원장이 박경철 원장과 200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청춘콘서트>는 이 기준에 들어맞는 대표적인 경우다. 매 공연마다 적게는 1000명, 많게는 5000명까지 청중이 몰린다. 대부분 조기마감돼 자리가 없다. 통로에 앉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무대 위까지 객석으로 사용된다. ‘청춘’ 콘서트이지만 학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신청한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청주, 원주 등 전국을 순회한다.

각계각층서 초대손님, 주제도 다양
<청춘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안철수 원장은 미국 유학 시절 유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John Doerr)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그런데 강연 형식이 좀 독특했다. 존 도어는 유명한 미국 방송인을 불러와 청중은 보지 않고 무대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안 원장은 “그 형식이 너무 좋아서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그런 형식의 대담 강연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한국에 돌아온 후, 리더십 강연을 제안받고 대담 파트너를 물색했다. 아무래도 방송 경험이 있는 사람이 좋을 것 같아 찾던 중 박경철 원장이 눈에 띄었다. 방송 경력 10년에 의사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나이도 두 살 어려 마음이 편했다.

2009년 안 원장과 박 원장이 이화여대에서 첫 강연을 할 때만 해도 아직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 안철수 원장은 한 번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연 도중 박경철 원장이 사전 상의 없이 즉석에서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전국 대학, 특히 서울 말고 기회가 적은 지방대학을 돌면서 강연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안 원장은 “공개석상에서 그런 제안을 하는데 안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며 “또 구두 약속을 100% 지키는 편이라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전국 도시를 찾아가는 <청춘콘서트>는 올해로 3년째다. 안 원장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 또 시대나 사람들의 요구가 모이고 소통하면서 지금의 <청춘콘서트>로 발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춘콘서트>는 초대손님도 다양하다. 법륜스님, 영화배우 김여진씨, 조국 서울대 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연예인 김제동씨,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박사 등이 출연했다. 분야와 이념을 막론하고 주제도 다양하다.

지난 7월 22일 광주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한 달에 1회 하던 강연 횟수도 늘렸다. 전국 32개 도시를 순회한다. 광주는 12번째 강연이었다. 인터넷(http://cafe.daum.net/chungcon)으로만 신청받고 광고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번 2000~3000명의 청중이 몰린다. 광주도 7월 8일 인터넷으로 접수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인 7월 15일, 2200명의 신청이 모두 마감됐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표를 양도해줄 사람을 찾는 글과 서서 보겠으니 입석이라도 들어갈 수 없겠느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안철수 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청춘콘서트>의 주제를 두 가지로 소개했다. 첫 번째 주제는 개인들의 노력의 중요성이다. 안 원장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서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 하는지가 강연의 첫 번째 주제”라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또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그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이야기”
두 번째 주제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안 원장은 “세상의 많은 모순, 문제점들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며 “나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의 모순이 심각하고, 이것이 어떤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면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할 때 문제 해결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날의 초대손님은 박재승 변호사였다. 박 변호사는 이날 ‘이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박 변호사는 “정의라는 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다”며 “정의가 화두가 되다보니 철학적인 이야기부터 다양한 논의가 많이 나오지만 공통된 것 하나를 추출한다면 ‘평등이 보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되는 사회가 정의롭다”면서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부모의 재력, 지위가 사람의 미래를 결정해버린다”고 지적했다.

대담과 강연 이후 현장에서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청중들의 즉석 질문을 받았다. 진지한 물음들 가운데 장난스러운 질문도 섞여 있었다. 안철수 원장에게 ‘아내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안 원장은 “대중은 제한된 일부 정보만 가지고 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가족, 안철수연구소 사람들, 직접 만나는 제자들, 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대답을 했다. 박경철 원장이 “아내를 사랑하시냐는 질문인데”라며 재차 대답을 요구하자 안 원장은 “답을 하면 쑥스러울 정도”라고 답해 청중석에는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청춘콘서트에 참석한 오지민씨(15)는 “아직 중학생이라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이해가 잘 되고 강의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안철수 원장님을 평소에는 딱딱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유머스러운 면도 있고 부드러운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청춘콘서트>를 주최하는 평화재단의 이효상씨는 “<청춘콘서트>에는 주로 꿈이나 비전을 찾고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자 하는 청년층이 많이 참가한다”며 “강연을 듣고 난 후 청중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안철수 원장이나 박경철 원장을 멘토로 삼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며 “청년들이 멘토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끼는데 강연을 통해 이런 부분을 조금은 해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표지인물]안철수 원장
 
“나는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2011 08/09주간경향 937호
ㆍ안철수 원장의 인간형, 우리 시대 윤리적 인간의 전형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멘토, 본받고 싶은 롤모델, 존경하는 인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 한 인간형이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말고는.

연합뉴스

 
한 포털 사이트에 안 원장의 단점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다. 그를 멘토로 삼고 역량을 평가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공개적으로 SOS를 보낸 것이다. 답변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거의 단점이 없다’였다. 굳이 말한다면 휴식을 즐기지 못하고 운동에 소질이 없는 정도라나.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리더십에 편중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평적 리더십의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 나 개인의 단점보다 수평적 리더십의 단점을 찾으면 엄청나게 많이 보일 것이다. 예를 들면 속도가 느리고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수직적 리더십에 식상해서 수평적 리더십을 갈구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절대 우위에 있지 않다. 전쟁이 나면 수직적 리더십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 정답이 다르고 서로가 상호보완적 관계다.”

안 원장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골프도 배우지 않았다. 저녁 약속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취미가 독서, 영화감상이다. 일과 자기 계발, 사회 공헌에 대한 책임,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 외에 다른 공간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언론의 지적처럼 ‘우리 시대 윤리적 인간의 전형’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존경할 수는 있지만 롤모델로 하기에는 욕망의 허락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욕심만 버리면 세상이 편하다”
“그게 또 나의 사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나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23년 동안 한국 언론에 나의 행적이 전부 나와 있다. 발언도 많다. 한 번도 말을 뒤집거나 하지 않았다. 참고 살거나 주위 시선을 의식하거나 꾸미면서 무슨 일을 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못 버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 자문위원 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자리 욕심만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세상 사는 게 너무 편하다.”

사람은 욕망을 조절하면서 산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세상이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보탬이 되는 게 그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의의 욕망’ ‘긍정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안 원장은 내성적인 성격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의사,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 벤처기업 창업, 경영학, 어느 것도 평생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그는 또 무엇에 도전할 것인가.

“나는 미래 계획이 없다. 그냥 현재를 열심히 살면 그 다음 선택이 나한테 주어진다. 카이스트 교수 시절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어떤 분이 ‘학교에만 있어서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사장 하면서 만날 은행 가서 어음 깡하고 다닌 사람한테 말이다. 평생 학교에 있었던 사람으로 다른 분이 착각할 정도로 교수로서 인정받은 것 아닌가. 그런 게 현재를 충실하게 산 결과이자 보람이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신동호가 만난 사람]안철수

 

“기득권층,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공멸”

 
 
2011 08/09주간경향 937호
ㆍ‘국민멘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한국에서 더 어려운 것은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는 일일 것이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단순히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아이콘만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융합된 개념으로 봐야 한다. 초창기의 ‘컴퓨터 천재’, 전성기의 ‘경영 귀재’, 지금의 ‘기부 큰손’ 등으로서 말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스스로 한탄한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에서 23년간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더니, 이제는 빌 게이츠마저 ‘뛰어넘고’ 있다. 적어도 한국 대학생은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 취업포털 알바몬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안 원장은 ‘함께 일해보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1위에 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을 2~4위로 밀어내고서 말이다.

‘안철수’라는 이름이 요즘 여러 지점과 영역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구직자가 가장 존경하는 CEO, 과학기술인이 꼽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과학기술인, 정보통신(IT)·미디어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네티즌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국내 지식인, 직장인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단골 1위다. 여·야 정당의 ‘영입 0순위’이자 ‘십고초려’ 대상이기도 하다.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3년째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청춘콘서트’도 폭발적이다. 특별히 홍보하는 것도 아닌데 2000~5000명이 몰린다.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연 6000여 건의 강연·인터뷰·면담 등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며, 그를 다룬 책만도 300종이 넘게 출판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국민 멘토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를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만났다.

융합과학이라는 게 어떤 것입니까.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핵 연구하는 데냐고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웃음) 그 정도로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분야이긴 합니다. 사회나 자연현상이라는 게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 가지 분야나 시각으로는 전체를 다 볼 수 없게 됐잖아요. 학문의 경계를 아무리 잘 나눈다고 해도 빈틈이 자꾸 생기니까 분야와 분야 사이의 그런 부분, 즉 경계선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아요. 따로 떨어져 있던 학문 영역을 서로 아우르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융복합 기술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전문 분야는 이미 선진국이 많이 앞서 가서 사실은 우리나라가 따라가기가 벅찬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안 한 분야에 그나마 새로운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아마 국가 R&D(연구·개발)도 많은 부분이 융합 쪽으로 배정이 되고, 그게 자꾸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식의 융합과 복합이 세계적 메가트렌드임은 업계도 인식하고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지구상에 새로운 물질은 없고 새로운 융복합만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의대 교수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 CEO, 경영학 교수 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이나 분야에 ‘도전’해 온 안 원장이 정년이 보장된 카이스트 석좌교수 자리를 떠나 서울대로 온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서울대로 옮겨온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카이스트에서 참 편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데도 익숙해지고, 외부 강연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주위에서 다 좋은 말씀만 하시고…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사회를 위해 더 공헌하라는 것이어서요. 제가 이제 50대에 접어드는데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나이잖아요. 편하게 살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더 많이 맡아서 더 일을 해야 하는 시기 같던데요? 카이스트에서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 즉 더 많은 책임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분야의 경험, 다시 말하면 행정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 경영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와 공헌한 직원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평가하고 보상해 주는가죠. 행정은 그 두 가지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행정에서 중요한 건 또 다른 두 가지더라고요. 첫 번째는 어떻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다 돈을 쓰는가이고, 두 번째는 그런 자원 배분을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을 전부 설득하고 소통을 해서 이해를 구한 다음에 하느냐인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두 가지가 중요한 부분이라서 이거 한번 경험을 해봐야겠다, 학교 행정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카이스트에서는 그런 기회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까.
“아쉽게도 (서울대에서 제안한 지) 한 달 정도 뒤에 카이스트에서도 학장직을 제안했거든요. 한 달만 더 빨리 말씀하셨으면 그 뒤에 어떤 대학에서 제안했더라도 안 갔을 텐데…. 제가 구두 약속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럴 리도 없었겠지만 만약 서울대에서 경영대학장을 제안했으면 안 갔을 거예요. 거기는 제가 굳이 가서 많이 바꿔놓거나 할 여지가 적잖습니까. 여기(융합과학기술대학원)는 제가 흔적을 남길 수 있고, 개인적으로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원장의 이 말 속에서 그의 중요한 인생철학 세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구두 약속도 저버리지 않는 데서 ‘정직한 경영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안철수연구소 CEO 시절의 기업철학이 떠오른다. 그 다음은 ‘스파이더맨은 힘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는 그 특유의 ‘흔적론’이다.

최근 산업계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익공유제 도입보다 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 근절이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관행을 뿌리뽑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익공유제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으로는 유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의 의미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결과로서 대기업이 부자가 됐으니까 못 사는 중소기업에 좀 나눠주라는 거거든요. 중소기업들이 거지도 아닌데, 일을 했으면 거기에 대해 적절하게 보답을 받는 것 아닙니까. 과정이 정당해야 합니다. 실제로 보면 우리나라만큼 잘된 법이 없어요. 현행법만 제대로 잘 지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안 원장의 표현이 조금 거칠어졌다.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나중에 정리하니까 그렇게 보였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언성을 한 번도 높이지 않았고, 크게 웃는 법도 없었다. 강한 표현도 부드럽게 들리게 하는 그의 말투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현행법을 제대로 잘 안 지켜서 발생하거든요.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 있잖아요. 헌법에 있으니까 그건 좌파 이념이 아니잖아요. 대기업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 색깔논쟁으로 몰고 가는, 그런 굉장히 비열한 프레임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고 너무 어처구니없어 반박의 가치조차 없는 논리더라고요.”

이번 정권 들어와서 ‘기업 프렌들리’라고 하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 출범 때부터 시장 친화적인 정책 또는 규제 철폐 좋다, 그렇지만 규제만 철폐하고 감시 기능을 강화하지 않으면 불법적인 약탈 행위를 방조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어요. 축구 경기에서 룰이 많으면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룰은 단순화하되 심판의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요. 심판을 다 없애버리면 반칙 일어나는 무법천지가 되니까요. 결국 대기업에 특혜만 주고 그냥 놔두다 보니까 중소기업은 불공정 거래 관행에 빠져서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 아닙니까. 지난 3년간이 아니라 사실은 10년간이죠.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양극화 쪽에는 양쪽 다 주범이라서요, 이념 논쟁은 이제 좀 지긋지긋합니다.”

계층 양극화에 이어 기업 양극화까지 앞으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 간의 이동이 단절됐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나라가 망하더라고요. 그런데 기득권은 그걸 깨닫지를 못하죠. 프랑스혁명 당일에도 베르사유 궁전에서 무도회가 열렸잖아요. 이대로 놔두면 거의 공멸하는 길밖에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 전체를 위해서는 기득권도 제발 정신 차리고 시민이나 중소기업도 다 같이 문제인식을 하고 공감을 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의해서 바꾸어 나가는 주체가 돼야 될 것 같습니다.”

안 원장은 기업 풍토나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왔다. 이를테면 한계기업이 눈먼 돈으로 연명하면서 건강한 다른 기업도 부실의 늪에 빠뜨리는 ‘좀비경제’, 재벌과 계약하는 순간 재벌 동물원에 갇혀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산업계의 ‘동물원 구조’ 등에 대해서 말한다.

안 교수께서 그런 비판을 세게 해도 공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강연 초청이나 심지어 영입하려고들 하니까요.
“사실은 굉장히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제 느낌이 어떠냐면, 벌판에 초식동물 혼자 나와 있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못 잡아먹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사실은 그렇게 강성도 아니고 좌파·우파 이념논쟁에 빠진 사람도 아닙니다. 상식과 비상식, 이게 저한테는 제일 큰 잣대라서요. 어쨌든 보는 눈이 많아서 불만 있는 사람도 가만히 보고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벤처기업 일으키고 나름대로 성공하고 지금 서울대학교 교수니까 걸어온 트랙 자체가 좌파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또 그쪽에서 보면 좌파적인 말을 계속 하니까 참 곤혹스러운 상대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겠고요. 또 한편으로는 아마도 기본적으로 낙관과 애정이 깔린 상태에서 비판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대학교수가 안 원장을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 같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현자의 역할을 한다는 뜻도 있지만 은둔자처럼 혼자서 이야기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이나 연대를 통해서 같이 목소리를 내면 한층 힘이 실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데 대한 섭섭함이랄까요.
“예, 그러니까 제가 전국 순회강연 다니는 게 사실은 그런 맥락인데요. 생각이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같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변화되리라고 저는 믿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혼자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박경철 원장이라든지, 법륜 스님이라든지… 점점 확장이 되고 있습니다. 박경철 원장은 질문자고 제가 답을 하는 역할인데요, 이번부터는 각 분야마다 게스트를 한 분 초청했습니다. 예를 들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국 서울대 교수, 김여진씨,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박사 등 좌우보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최소한 생각이 같은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자본주의 경영학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와튼스쿨을 나왔는데, 그해(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붕괴음을 내지 않았습니까. 안 원장께서 직접적으로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거나 지속가능경제, 기업사회책임 같은 걸 강조하는 걸 잘 볼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는 말씀 중에 그런 내용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공존과 장기적인 시각, 불평등 해소 내지는 격차 해소, 이런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처음에 V3를 만들어 무료로 보급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치는 잘 모르고 체질에도 잘 안 맞는다고 말했는데 정치권이 진짜 ‘십고초려’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하하.(웃음) 십고초려는 그 표현을 제가 했는데 원희룡 의원이 썼더라고요. 절대로 열 번까지 안 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제안을 거부했던 이유가, 혼자서 들어가서는 아무 것도 바꿔놓지 못한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요, 저도 예외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가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저 혼자 들어가서 높은 자리에서 다 대접 받다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냥 나오는 겁니다. 생각이 같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 동시에 바꿔놓으면 그거야 말로 좋겠는데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 혼자서 바꿀 수 없으니까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전국 순회강연처럼)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출처 : 사람답게 사는 세상
글쓴이 : 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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