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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실(seal)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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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실(seal)의 유래


 12월이면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는 눈 내리는 계절에 또 한해가 다 가는구나 하는 감회에 젖게 한다. 먼 여행을 다녀온 아득히 먼 느낌은 나만을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아쉬움도 남게 된다.

 

마음은 있지만 풍족하지 못한 세상의 물결에 닳아버린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도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는 어둠이 걷히면 태양과 아침이 준비되어 있는데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가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12월은 매년 돌아오고 있는데 손길을 기다리는 어렵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성탄절의 성스러운 날은 영원히 이어지는데….


1904년 12월 10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Einal Holboell)은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실을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기금으로 당시 영국 산업혁명 이후 전 유럽을 휩쓴 결핵으로 인해 꺼져가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마침내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국왕인 크리스천 9세도 적극 지원에 나서 그의 소박한 착상은 빛을 보게 되었다.


덴마크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실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엔 루마니아까지 전파되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실을 발행하였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양사(自然療養社)라는 민간잡지사가 처음으로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 실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로 처음 상륙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32년 12월, 캐나다 선교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실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893년 11월 10일 처음으로 평양에서 서양의학과 기독교를 전한 감리교 부부선교사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을 부모로 서울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환자들과 일반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5년부터 황해도 해주 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하였다.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결핵운동에 참여하여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잘 살도록 하며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실이 발행했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그는 스파이 누명을 쓰고 일본헌병대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어 실 발행도 중단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동이 되어 한국복십자회에서 다시 발행을 시작으로 1952년 한국기독교와 의사회에서 발행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실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의 참여로 결핵퇴치 재원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실 수익금은 지난해 결핵협회 전체예산 250억원 중 60억원(24.8%)을 차지할 정도로 높지만 2003년 65억원이었던 모금액이 매년 5천만원에서 1억원씩 감소하면서 지난해에 62억2천만원으로 줄어들었다.

 

판매량에 한계를 느낀 결핵협회는 최근 3년간 매년 66억원을 유치해 왔던 모금 목표액은 올해는 60억원으로 낮추고 말았다.

 

지금까지 판매량을 약 60%를 초·중·고교학생들과 관공서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학생들과 젊은 층에서 우편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는 대신 이메일을 이용한 E카드에 익숙한데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실도 예전같이 잘 만들면 많이 팔린다. 카드뿐 아니라 1년 중 우표 옆에 100년 전부터 만들어왔던 실을 역사성 있게 성의껏 도안을 잘하여 수집의 가치성을 높이면 판매수입금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에도 어디선가 힘들어 할 불우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마음에 따스한 손길로 크리스마스실을 붙여보자.


이명수/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두천시협의회장

게재일 : 200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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