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BIG
[스타재테크 ①] 노주현 “사업은 프로의식 가져야 성공”
"재테크라 난 재주가 없는데…"
탤런트 노주현(63)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여러 차례 사업을 했고, 농장도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는 재태크 얘기가 나오자 "글쎄"라는 말부터 꺼냈다. 하지만 그는 농장을 갖고 있는 사업가이자 재테크 안목도 깊었다. 단지, 재테크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데 시각차가 있었다.
'노주현', 그의 이름 석자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스타다. 1970년대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하면 노주현을 떠올릴 정도로 노주현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노주현은 재벌·의사·변호사 등 속된 말로 '있는 집 자식' 역할만 해서 그런지 부티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노주현은 그런 선입관을 완전히 깼다. 2001년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마음씨 좋은 가장이자 소방서 소장역을 맡았다. 지금은 KBC 2TV 비타민에서 '노 반장'으로 출연하며 웃음 많고 후덕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탤런트 첫 월급 10만원
노주현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다니던 1968년 TBC 탤런트 공채 5기로 입문했다. 탤런트 김창숙(60)이 그의 동기다. 주연만 했을 것 같지만 그도 신인시절 2년간 엑스트라를 했다. 그 때 받은 첫 월급이 지금 돈으로 쳐 200만원 정도. 당시 버스요금이 20원임을 감안하면 10만원 남짓한 돈을 받은 셈이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막걸리 정도는 먹고 다닐 정도였어요." 그러다 '아내의 모습'이란 드라마로 주연을 맡으며 순식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연예인이란 직업에 갈등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한 뒤부터는 더욱 그랬다. "배우란 직업에 갈등이 많았어요. 30대 때는 계속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고요. 그래서 부업도 그때 시작하게 됐지요."
그가 처음 한 부업은 광고대행사. 옥외 광고물을 수주하고 설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만 하던 사람이 몸을 쓰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어요. 2년 정도 하면서 사업은 안정됐지만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죠."
옷가게에도 손을 댔다. 남성복 대리점이었다. 1986년부터 이것도 딱 2년만 했다. "회사에서는 저에게 대리점을 내줌으로서 광고 효과를 노렸고 저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한마디로 윈-윈 이었죠." 그러나 수익이 시중의 은행이자만도 못해 접고 말았다.
다음으로 시작한 게 피자집이다. 1988년 롯데월드에 피자헛 매장을 낸 것. 피자 매장은 19년간이나 했다. 시작할 당시에는 피자가 생소한 음식이라 사업이 될까 싶었으나 서울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로 물 건너갔다 온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어린이날에는 하루 매출 750만원을 찍은 적도 있었다. "60석밖에 안 되는 작은 매장이었지만 재미가 쏠쏠했어요. 자리도 좋았고 제 얼굴을 보고 오는 고객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그가 사업을 접을 때는 하루 매출이 거의 300만원 수준까지 올랐다. 외식업의 평균적인 수익율 30%만 계산해도 어림잡아 한 달 평균 3000만 원 가량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온 셈이다. 노주현은 "사업은 프로의식이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서비스한다고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지요"라고 강조했다.
제주도에 망고농장 구입
1997년에는 제주도에 있는 망고농장을 친구와 함께 사들였다.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한 지인을 위해 급전을 주고 산 것. 지인을 도와주기 위해 산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땅 부자가 됐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 위치한 2만5000평이다.
1만5000평은 하우스, 1만평은 부지로 남아 있다. 노후를 위해 사들였지만 직업상 제주도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또 관리를 하는 친구도 용무가 바빠 수익도 '형편없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태흥리 땅값이 현재 평당 15~16만원인 점을 본다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노주현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1989년 구입한 경기도 용인 미리내에 있는 전원주택이다. 총부지가 150평인 이 주택은 그가 인근 주민들의 문화생활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작은 공간이다.
"서울까지 공연을 보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연극·콘서트·갤러리 등을 이곳에서 열거에요." 이를 위해 지금은 새롭게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이름도 곧 지을 예정이다.
가장 유력한 이름은 '노주현 소극장'이나 '노주현 갤러리'이라고 한다. 현재 미리내 전원주택 평당 가격은 200만원 꼴. 하지만 거의 리뉴얼 수준의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그 가치는 땅값보다 2~3배 정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과 펀드도 조금씩하고 있고 경제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고 경제기사도 매일 매일 체크하죠. 하지만 돈을 쫓는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돈은 움직이는 거예요. 자신에 맞는 룰을 세워 돈을 관리해 나간다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재테크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TV 연예프로그램에, CF를 3개나 찍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노주현은 "배우로서 실질적 재테크는 돈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항상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냐"며 소극장 건설 현장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탤런트 노주현(63)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여러 차례 사업을 했고, 농장도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는 재태크 얘기가 나오자 "글쎄"라는 말부터 꺼냈다. 하지만 그는 농장을 갖고 있는 사업가이자 재테크 안목도 깊었다. 단지, 재테크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데 시각차가 있었다.
'노주현', 그의 이름 석자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스타다. 1970년대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하면 노주현을 떠올릴 정도로 노주현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노주현은 재벌·의사·변호사 등 속된 말로 '있는 집 자식' 역할만 해서 그런지 부티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노주현은 그런 선입관을 완전히 깼다. 2001년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마음씨 좋은 가장이자 소방서 소장역을 맡았다. 지금은 KBC 2TV 비타민에서 '노 반장'으로 출연하며 웃음 많고 후덕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탤런트 첫 월급 10만원
노주현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다니던 1968년 TBC 탤런트 공채 5기로 입문했다. 탤런트 김창숙(60)이 그의 동기다. 주연만 했을 것 같지만 그도 신인시절 2년간 엑스트라를 했다. 그 때 받은 첫 월급이 지금 돈으로 쳐 200만원 정도. 당시 버스요금이 20원임을 감안하면 10만원 남짓한 돈을 받은 셈이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막걸리 정도는 먹고 다닐 정도였어요." 그러다 '아내의 모습'이란 드라마로 주연을 맡으며 순식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연예인이란 직업에 갈등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한 뒤부터는 더욱 그랬다. "배우란 직업에 갈등이 많았어요. 30대 때는 계속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고요. 그래서 부업도 그때 시작하게 됐지요."
그가 처음 한 부업은 광고대행사. 옥외 광고물을 수주하고 설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만 하던 사람이 몸을 쓰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어요. 2년 정도 하면서 사업은 안정됐지만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죠."
옷가게에도 손을 댔다. 남성복 대리점이었다. 1986년부터 이것도 딱 2년만 했다. "회사에서는 저에게 대리점을 내줌으로서 광고 효과를 노렸고 저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한마디로 윈-윈 이었죠." 그러나 수익이 시중의 은행이자만도 못해 접고 말았다.
다음으로 시작한 게 피자집이다. 1988년 롯데월드에 피자헛 매장을 낸 것. 피자 매장은 19년간이나 했다. 시작할 당시에는 피자가 생소한 음식이라 사업이 될까 싶었으나 서울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로 물 건너갔다 온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어린이날에는 하루 매출 750만원을 찍은 적도 있었다. "60석밖에 안 되는 작은 매장이었지만 재미가 쏠쏠했어요. 자리도 좋았고 제 얼굴을 보고 오는 고객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그가 사업을 접을 때는 하루 매출이 거의 300만원 수준까지 올랐다. 외식업의 평균적인 수익율 30%만 계산해도 어림잡아 한 달 평균 3000만 원 가량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온 셈이다. 노주현은 "사업은 프로의식이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서비스한다고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지요"라고 강조했다.
제주도에 망고농장 구입
1997년에는 제주도에 있는 망고농장을 친구와 함께 사들였다.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한 지인을 위해 급전을 주고 산 것. 지인을 도와주기 위해 산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땅 부자가 됐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 위치한 2만5000평이다.
1만5000평은 하우스, 1만평은 부지로 남아 있다. 노후를 위해 사들였지만 직업상 제주도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또 관리를 하는 친구도 용무가 바빠 수익도 '형편없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태흥리 땅값이 현재 평당 15~16만원인 점을 본다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노주현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1989년 구입한 경기도 용인 미리내에 있는 전원주택이다. 총부지가 150평인 이 주택은 그가 인근 주민들의 문화생활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작은 공간이다.
"서울까지 공연을 보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연극·콘서트·갤러리 등을 이곳에서 열거에요." 이를 위해 지금은 새롭게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이름도 곧 지을 예정이다.
가장 유력한 이름은 '노주현 소극장'이나 '노주현 갤러리'이라고 한다. 현재 미리내 전원주택 평당 가격은 200만원 꼴. 하지만 거의 리뉴얼 수준의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그 가치는 땅값보다 2~3배 정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과 펀드도 조금씩하고 있고 경제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고 경제기사도 매일 매일 체크하죠. 하지만 돈을 쫓는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돈은 움직이는 거예요. 자신에 맞는 룰을 세워 돈을 관리해 나간다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재테크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TV 연예프로그램에, CF를 3개나 찍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노주현은 "배우로서 실질적 재테크는 돈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항상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냐"며 소극장 건설 현장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2009.04.23 09:26 수정
반응형
LIST
'▣② 成功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전산 이야기] 강력한 리더쉽 일본전산 이야기 리뷰 (0) | 2009.04.28 |
---|---|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잊어라 (통신시장 어디로) (0) | 2009.04.26 |
[일본전산 이야기] 목소리 큰 놈, 밥 뻘리 먹는 놈을 뽑아라 (0) | 2009.04.17 |
임원부터 가르쳐야 한다 (0) | 2009.04.10 |
하바드 출신 리더들의 성공요인 (0) | 2009.04.05 |